
그런데 감정과 환경에 대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매우 중요한 요소가 하나 더 있다. 이는 션이 삶을 바꾸기 위해 자신도 미처 모르고 활용한 것이기도 한데, 바로 장소에 대한 개인적 애착이다.
심지어 이 현상에는 '장소 애착(place attachment)'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장소 애착에서 중요한 건 그 장소가 특별한 성질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그곳이 개인에게 어떤 식으로 감정적 울림을 주느냐이다. 내가 친구들을 상대로 '자신만의 장소'가 있는지 즉석 설문 조사를 해보니 메인주 연안의 외딴 해변, 미시간주 북부의 슬리핑 베어 모래언덕. 로스앤젤레스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와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이런 곳들을 '마음의 안식처', '정신적 고향' 같은 말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 이름이 무엇이건 누군가에게 만족감, 행복, 의미 같은 강렬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곳이 이런 장소가 된다.
우리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양육자와 맺는 애착 관계는 우리의 감정적 삶을 형성하고 이후 우리가 얼마나 타인을 잘 믿는지, 얼마나 회피적이거나 개방적인지에 영향을 미친다. 장소 애착은 '대인 애착(interpersonal attachment'만큼 인기 있는 주제는 아니지만 분명 더 알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렇게 특별한 공간들은 우리에게 사랑 같은 감정이나, 행동으로 나서게 하는 책임감을 불러일으킨다.
(중략)
공간을 바꾸면 우리에게 들어오는 정보도 달라진다. 집 밖으로 걸어 나가 근처 숲이나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감각 경험이 전환되는 게 느껴질 것이다. 주의도 환기된다. 그에 따라 관점도 전환된다. 물론 힘든 일이 닥쳤을 때는 환경을 바꾸는 사치를 누리기가 어렵다. 설령 우리가 원하더라도 말이다. 방에 처박히거나 나만의 특별한 장소로 향할 만한 상황이 아닐 때도 있다. 형광등 불빛 아래의 사무실 칸막이에 앉아서 시간 안에 보고서를 마쳐야 할 때도 있다. 이렇듯 환경을 바꾸는 일에는 수많은 제약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공간에 대한 우리의 통제력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크다. 꼭 다른 공간으로 옮기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인류는 지난 수천 년간 물리적 세계를 말 그대로 변형해오지 않았던가. 다리를 놓고, 고속도로를 깔고, 초고층 건물을 세우고, 골프장을 건설하고, 굴 양식장을 만들고, 커뮤니티 정원을 가꾸면서 말이다. 인간은 주변 공간을 변화시키는 재주를 갖고 있다.
그러니 감정적 필요에 따라 공간을 바꿀 수도 있지 않겠는가.
(중략)
현재 자신이 머무르는 공간을 변화시키기 위해 택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원치 않는 감정을 유발하는 환경에서 무언가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경험하고픈 감정을 키워주는 무언가를 환경에 추가하는 것이다.
그 공간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떠올리면서 다음 사항들을 생각해 본다.
- 감정 경험을 형성하는 자신의 공간에 약간 변화를 주기 위해서 오늘,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 스트레스나 불안 같은 감정 반응의 강도를 낮추기 위해 무엇을 제거할 수 있는가?
- 평온함과 즐거움 등 다른 감정을 강화하기 위해 무엇을 추가할 수 있는가?
- 근처에 있어 쉽게 갈 수 있는 공간 중에 자신만의 '감정적 오아시스'라고 할 만한 곳이 있는가? 어떻게 하면 그곳에 들르는 재충전 시간을 자신의 주간/일일 일정표에 끼워 넣을 수 있을까?
감정적 오아시스는 어디에나 있다. 지구 반대편 열대지방의 섬(멋지지 않은가!)에 있을 수도 있고, 도시 반대편, 길 건너편, 거실 너머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다. 우리가 단지 그런 공간들을 중심으로 일과를 짜지 않을 뿐이다. 자신을 마라톤 경주에 나선 주자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마라톤 코스를 달리다 보면 감정을 회복시켜주는 충전소가 중간중간 나온다. 여러분은 평소에 이런 공간을 얼마나 의식하고 있는가? 충전소를 이용하고 있기는 한가?
출처 : 감정의 과학
오늘 이 책을 다 읽어보았는데요. 이 블로그에 들러주신 분들께 추천드리며, 여러 사람의 에피소드들을 잘 배치해서 심리학적 개념을 이해하기에 일반인에게 어렵지 않도록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감정에 대하여 좁은 시야를 지닌 분들에게 확장에 도움을 주리라 기대합니다. 발췌된 내용은 감정에 영향을 주는 환경요소 중에서도 장소에 대한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심리학의 누적되어온 이론들을 배우고 계속 업데이트해가다 보면 우리 인간이 얼마나 맥락(장소와 환경, 타이밍 등)에 영향을 쉽게 받는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예를 들어 평소에는 쇼핑욕구를 크게 느끼지 않다가 어느 마케팅으로 꾸며진 공간에 가면 뭔가 홀린 듯이 뭘 집어 들거나 예정보다 더 큰돈을 지불하는 우리를 발견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주어진 환경과 운명에 굴복되는 존재인가요?" 이런 류의 질문이 심리치료 장면에서 나올 때 내담자들 대개는 왠지 그것은 꼭 아닐 것 같다고 대답하곤 합니다. 막상 상담실에 오기 전에 왠지 나만은 그래야 할 것 같다는 믿음 정도가 99%인 분들조차 말이지요.
그런 대화를 나눴음에도 환경과 운명에 굴복하고 본의 아니게 충성하게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유를 파헤쳐가다보면 자신들에게 뭔가 작지 않은 변화가 일어나길 소망하는 것에 머물러 있는 내면의 경험이 드러납니다. 가령 내게 처한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어 버리거나 돈이 많이 주어진다거나 갑자기 큰 결심을 해 자신이 확 달라져버리는 것을 소망만 하고 마는 것으로요.
저 글에서도 이야기나오듯 인류는 다른 생명체들과 사뭇 다르게 자신들이 처한 환경을 도무지 가만히 놔두질 못하는 점에서 신통한 존재들입니다. 당장 주변을 돌아봅시다. 집이 황량하면 작은 식물이라도 놓고, 예쁜 인테리어 소품을 배치하며, 안락함을 위해 쇼파나 침대 같은 가구를 새로 들이기도 하지요. 그것도 모자라 반려로 삼을 동물까지 데려와 키웁니다. 그리고 그런 바꾼 환경에 정서적으로 스스로 영향을 받으려 하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말여요.
같은 존재인 나라도 '맥락을 통해' 나의 감정과 생각,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 뿐만아니라 맥락의 변화가 꼭 거창하지 않은 미미한 것이라도 영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잘 유념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뭘 가볍게 장소를 바꿔보지를 고려해 보는 거죠.
어제 상담을 했던 무기력에 깊게 빠져 있었던 내담자가 '이대로는 안되겠다, 뭐라도 달라져야겠다'는 자기 지향의 가치를 치료장면 안에서 어렴풋이 접촉했을 때, 스스로 방정리를 떠올리더라고요. 제가 그다지 넛지(nudge)하지 않았음에도 말이죠. 그 생각의 연결에 감탄과 응원을 표현해 줬지만, 상담장면이 아니라 제 기질대로 마음껏 감정을 내보여도 좋았다면 내비친 반응의 2배를 했었을 겁니다. 그 내담자가 상담 후로 방정리를 했든 하지 않았든 그 피벗은 참 반가웠습니다. 물론 휴지 하나를 버리는 정도의 방정리라도 실행에 옮겼다면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발전의 시동은 걸어졌을 것이고, 작게라도 달라진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겁니다. 그것은 나를 위한 가치에 연결된 전념행동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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