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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 모음

경험을 어떻게 접근하고 처리하는가는 애착으로 발달된다

psyglow 2025. 12. 29. 15:30

Fonagy의 연구는 대부분 내적 세계와 외부 현실 간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반영하는 심리적 경험의 양식을 이해하도록 돕는 데 초점이 맞춰져 왔다. 다음은 세 가지 주관적인 양식, 즉 심리적 등가성(psychic equivalence)과 가장하기(pretense) 및 정신화(mentalizing)에 대한 Fonagy의 설명이다.

심리적 등가성 양식에서 내적 세계와 외부 현실은 그저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에서는 신념과 사실을 구별하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물리적인 세계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런 마음 구조에서는 우리가 나쁜 대우를 받으면 우리 자신이 나쁜 사람이다라고 느끼기 쉽다. 그리고 자신이 나쁘다고 느끼기에 우리는 나쁜 대우를 받을 것을 ‘알고 있다.’ 이런 폐쇄적인 체계에서는 심리적 주체로서 자기는 묻히기 쉽다. 경험을 해석하거나 창조하는 주체로서의 ‘나(I)’는 없고, 일어나는 경험의 대상이 되는 객체로서의 ‘나(me)’ 만 존재할 뿐이다.

가장하기 양식에서는 내적 세계와 외부 현실과 분리된다. 여기서 우리는 현실에 의해 구속되지 않는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실재로 느껴지고, 우리가 무시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중요하지 않게 여겨진다. 해리와 부정 그리고 극단적인 자기애적 과대성은 모두 이 '가장하기'의 예다. 이 양식에서는 심리적 등가성 양식처럼 경험을 해석하거나 창조하는 주체로서의 자기는 억눌려 있다. 왜냐하면 현실을 고려하는 행위는 상상했던 것을 위협하고 또한 무시했던 것을 보게 할 여지를 두기 때문이다.

정신화 (혹은 성찰적) 양식에서 우리는 내적 세계가 외부 현실과 분리되어 있으면서 또한 연관되어 있음을 인식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느낌 및 환상이 우리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에 영향을 주고, 또 그것에 의해 영향을 받는 방식에 대해 성찰할 수 있다. 이 양식에서 우리의 주관적인 경험은 해석적인 깊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따라서 - 우리는 사건과 사건에 대한 우리의 반응 간 차이를 알 수 있기 때문에 - 어느 정도의 내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정신화는 풍부하고 복잡하며 모호한 자기와 타인의 세계 - 또한 우리의 실제 현실이 변함에 따라 우리가 외부 현실에 대한 우리의 정신적 표상을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는 세계 - 를 보여 준다.

Fonagy에 의하면 이 양식들은 발달과정에서 순차적으로 드러난다. 처음에 유아와 어린 아동은 주관적 경험이 어쩔 수 없이 그리고 무섭게도 실재로 느껴지는 심리적 등가성의 세계에서 살 수밖에 없다. 그런 다음 아이들은 주관적 경험이 현실과 분리되는 가장하기의 양식을 통해 일종의 자유를 찾는다. 그들은 놀이를 하면서 현실적 제약이 그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발달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면 4세쯤부터 이 두 양식의 통합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제 내적 세계는 외부 세계와 동등한 것으로 여겨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단절되지도 않는다. 성찰적 양식의 출현과 함께 내적 현실과 외부 현실 간의 관계를 암묵적으로 그리고 명시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능력이 커진다(Allen & Fonagy, 2002; Fonagy, 2001; Fonagy et al., 2002).

심리치료에서 우리가 만나는 환자들은 심리적 등가성 그리고/또는 가장하기 양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리적 등가성 양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에 환자는 사실과 같은 것이기에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압박감을 주는 생각과 느낌 때문에 고통받는다. 가장하기 양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에 환자는 소망이 담긴 생각으로 현실에서 높이 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으로부터 그리고 그들에게 중요한 사람들로부터 격리된다. 연구자뿐만 아니라 심리치료자외 부모에게 중요한 질문은 '심리적 등가성과 가장하기 경험 양식에서 정신화 양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촉진하는 것은 무엇인가?'다. 이에 대한 Fonagy의 답은, Bowlby와 Ainsworth 및 Main의 결론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서, 애착의 상호주관적 관계라는 것이다. 이런 관계는 먼저 정서 조절을 충분히 할 수 있게 해 주고, 그런 다음 중요한 점으로, 성찰할 수 있는 타인과 함께 어느 정도의 놀이를 할 수 있게 해 준다.

출처 : 애착과 심리치료

위 글은 심리상담과 심리치료를 직무로 해나가는 분들에게 필독서인 애착과 심리치료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심리평가를 깊게 배운 임상가들은 검사를 받는 사람이 ‘경험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지각과 그 해석의 방식을 파악하려 하고,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측정 도구들과 실험과 유사한 상황을 검사장면에서 제시하게 됩니다. 그렇게 파악한 경험의 처리 양식은 진단 및 치료 과정에서 중요한 고려를 가능하게 합니다.

경험의 양식(Modes of Experience)이란 우리가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인식하고 처리하는 방식과 그 수준을 말합니다. 참 신기한 것이 성숙되고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마련해 주는 정신화 모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안정화된 애착 경험을 거쳐 통합이 이끌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시 모든 건 애착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Fonagy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 양육자의 거울 반응(Mirroring)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심리치료에서는 양육자로부터 충족되지 못한 애착의 경험을 치료 장면에서 할 수 있도록 돕는데요. 하지만 그것이 그저 위로하고, 위안하며, 문제해결을 대신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내담자가 보이는 감정을 담아주고 견뎌주기, 그리고 ‘내담자가’ 자기 경험을 살펴볼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더불어 치료자 혼자 내담자의 경험을 들여다보고 해석과 분석을 제시하는 것도 main은 아닙니다. 그런 해석과 분석을 치료자가 사용하겠다면, 그것은 내담자가 자기 경험을 들여다보는데 유용해야 하는 것이지, 그 목적에서 벗어난다면 머리로만 소통하게 되었을 뿐 내담자에게 실질적인 영향을 줄 수 없고, 더 좋지 않게는 또 하나의 갇힌 사고, 경직된 자기평가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저 글의 마지막 줄 친 부분도 많이 와닿았습니다. ACT를 제게 가르쳐주신 문현미 선생님께서 치료가 놀이와 같은 느낌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요. 처음에는 압도된 경험에 비록 허우적댈지언정 그것을 같이 천천히 안전하게 재경험하며, 관찰과 탐구하기의 모드가 작동되고 나면 우리는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짐을 느낍니다. 그리고 놀이처럼 지금 이 순간에 초점을 맞추고, 주체성을 인식하는 가운데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난 과정을 체험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실제 삶에 반영될 수 있게 되기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