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NS, Blog, YouTube 같은 대중매체의 발달과 AI 도구의 상용화는 이미 전문적으로 연구된 심리학적 지식 정도는 손쉽게 얻어내는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심리상태에 대한 지식적 분석과 이해의 부족이 main인 사람들에게는 꽤 도움이 될만하리라 봅니다.
그러다보니 AI가 발달하면 심리치료 하는 직업이 무용해지지 않겠느냐는 위기설도 많이 대두되었지요. 만약 심리치료가 단지 심리학적 지식과 해결책을 팔아왔다면 그 말은 맞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름 책도 읽고, 혼자 노력해보다가 안 되어서 심리치료로 제대로 받은 후 도움을 얻었던 분들이라면 어렴풋이 알거라 추측합니다. 심리치료는 지식과 해결책을 얻기 위한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는 사실을요.
심리치료는 정확히 말하면 경험을 팝니다. 그리고 더 명료히 말하면, 내담자와 치료자가 같이 만들어 나가는 순간의 경험입니다. 이 경험은 내담자 혼자서는 만들어낼 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치료자만 혼자 전문적인 척 난리굿을 벌인다고 되지도 않습니다. 그랬다면 동영상으로 제공되는 영상 만으로 충분했을 테지요. 치료란 작업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함께 접촉되고, 경험을 공유하기 위하여 내담자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물론 치료자는 내담자가 일반적으로 마주하는 주변 사람들에 비해 더 정제되고 도움을 의도한 상호교류를 해줍니다.
그리고 심리치료의 경험은 단지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만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치료에 필요하다면 부정적인 감정도 체험하도록 하지요. 물론 심리치료에 대해 ‘날 기분 좋게 해 준다’라는’ 단순하고 잘못된 개념화를 해온 내담자들에게는 불쾌하고 위협적이며, 배타적인 태도를 갖게 되는 지점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차라리 치료자보다 AI가 더 나에게 낫다고 속상해하기도 하죠. AI는 기대한 말을 해주니까요.
아래 글은 통찰과 이해에 대한 ACT의 지혜로운 관점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생각의 탈융합을 떠올리며 읽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또 다른 회피 전략은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통찰 지향적인 치료는 오랜 기간 동안 유지되어 왔습니다. 정신분석은 임상가 훈련에 대해 한때 가졌던 힘을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 잔재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조만간 변화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는 서구 문화 및 동양 문화에 대한 일부 해석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즉,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면 그것에 좀 더 효과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해의 장점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이해가 우리에게 상당히 많은 혜택을 가져온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ACT는 통찰 지향적인 모형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우리기 통찰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통찰을 매우 좋아합니다. 통찰은 이름답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통찰이 행동이나 정서의 변화를 가져온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사실 그 역방항로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당신이 가지고 있던 통찰을 살펴보십시오. 그러한 통찰은 당신의 견해를 바꾼 어떤 사건이나 행동에 뒤이어 발생하지 않았나요? (중략)
통찰은 배기 가스지 연료가 아닙니다. 경험은 연료이지만, 통찰은 경험으로부터 얻는 최고의 산물이 아닙니다. 최고의 산물은 아버지와의 새로워진 관계입니다. 경험은 몇 가지 산물이 있습니다. 통찰, 관계의 변화, 그리고 아들이자 아버지로서의 나 자신에 대한 새로운 시각 등등. 내가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아마도 새로워진 아버지와의 관계가 될 것입니다.
(중략)
어떤 종류의 인간 고통은 이해와 정보의 부족으로부터 생겨난다는 것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만약에 당뇨병이 있는 사람이 어떤 음식에 당이 많고 적은 지를 알지 못한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만약에 알코올중독 문제가 있는 사람이 맥주, 와인, 위스키 등도 주류에 속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가치에 일관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데 필요한 모든 종류의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당뇨병 환자가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고 또 먹지 말아야 하는지 알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해가 되는 방식으로 행동해 결국은 눈이 멀거나 다리를 절단해야 하거나 또는 죽음에 이르게 되었나요? 얼마나 많은 알코올 중독자가 금주를 해야 함을 알고 있음에도 음주를 계속해 일자리와 가족과 친구를 잃고 결국은 무덤으로 향하게 되나요?
정보는 강력할 때는 강력한 약이 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매우 약한 처방입니다. 물론 우리 마음은 언제나 정보를 조금만 더 얻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 말합니다. 정보를 추구하는 것이 그것을 찾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면 어떨까요? 그럴 수도 있을까요? 언어적인 이해를 과소평가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당신은 이 세상에 있는 수영에 대한 책을 모두 읽었어도 여전히 수영을 하는 법을 모를 수 있습니다. 수영을 배우기 위해서 당신은 물에 들어가야만 합니다. ACT 모형이 이해의 힘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해의 부족이 인간 고통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보지 않을 뿐입니다. 더 나아가 ACT는 언어적 이해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것은 고통을 일으킬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언어적 이해가 도움이 되지 않는 영역에서는 더욱이 그렇습니다.
출처 : 수용전념치료에서 내담자와 치료자를 위한 마음챙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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