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리치료를 하는 치료자는 치료과정을 잘 예측할까요? 내담자를 다 혹은 많이 알고 치료하는걸까요? 당신 앞의 치료자는 정작 내담자에 대해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게 사실일 뿐입니다.
물론 지식이 있습니다. 심리과정에 대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지식, 이상 증상과 징후라는 특징들에 대해, 많은 내담자들을 겪어오면서 자주 혹은 드물게 출현한 이야기들과 모습들에 대한 것들 말이지요. 근데 그건 방대한 데이터일 뿐, 앞에 앉아있는 내담자를 결국 말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회기가 더해지며 내담자가 말한 것과 드러난 반응들이 점점 기억에 쌓여가기는 할 겁니다. 하지만 그 또한 내담자와 짧은 시간 마주해 알아내게 된 내담자에 대한 정보의 편린일 뿐입니다. 치료자는 그 편린으로 추론을 해갈 뿐이지요.
이런 말을 하게 된다면 많은 내담자들은 불안해질 수 있을 겁니다. 내담자들은 치료자가 자신에 관해서 어떠한 답과 예측을 갖고 있기를 바랄 테니까요. 그리고 몇 마디 안 들어도 마치 내담자를 아주 잘 안다는 듯, 앞으로의 문제를 싹 고쳐줄 수 있다는 듯 선전하는 다른 전문가나 점쟁이를 갈망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아주 짧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안심만은 얻어낼 수 있겠죠.
ACT를 접하고 수퍼바이저 분들의 멘트에서 가장 인상에 와닿았던 것은 ‘모르죠’란 말이었습니다. 정말로요, 수퍼비전에서 ‘모르죠’가 참 자주 나옵니다. (어제도 듣고 왔어요.) 그 표현을 처음 정성껏 인식했을 때 실은 치료자로서는 해방감도 들었습니다. “맞어, 나 몰랐는데 모른다고 해주시네!”하면서 내담자를 모르는 나에 대한 자책감과 좌절감, 부담감이 소화되어 쑥 내려가는 느낌이었달까요? 근데 또 신기하더란 말입니다. 그러면서 내담자에 대한 호기심과 설렘도 같이 올라옵니다. “좀 더 알아봐야지~ 오 이런 것도 있어?!”하면서 접근적 태도와 탐색 모드가 일어나는 걸 체험했으니까요. 아마도 마음챙김을 하고 미지를 받아들인 이 순간에는 치료자로서 저에게 수용의 창이 넓어지고 있었을 겁니다.
우린 모릅니다. 신이 아니니 모르는 게 기본값(default)인 존재들이에요. (너무 억울해맙시다,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얘도 모르고 쟤도 몰라요~) 하다못해 나 하나도 당장 한 치 앞을 어떻게 하고 있을지 모르는 마당에, 치료관계에서 타자인 내담자를 치료자가 모를 수밖에요. 그럼 모르니 치료에 방도가 없는 걸까요? 그건 또 아니죠. 결국 같이 탐구해나가는 겁니다, 내담자의 정신세계라는 미지를요. 같이 그 순간순간을 주목하고, 체험하며, 더 나아가서는 같이 여행한 듯 즐기기까지도 나타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방법은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두 사람에게 선물처럼 떠오르게 되죠.
아래 글은 심리치료자들에게 알지 못하는 것을 배우라는 지혜를 전달하고, 그 방법으로 마음챙김의 훈련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마음챙김이 어떻게 우리의 치료 모형을 더 가볍게 붙들도록 도와주는가?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오고, 생각에 대한 집착을 느슨하게 해서 우리는 과거와 미래의 사고들을 한쪽으로 두는 수련을 한다. 현재의 순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다음 순간에 무엇이 일어날지 우리는 모른다는 것을 넌지시 받아들이는 것이다. 비록 일시적이지만 우리는 알고 통제하려는 소망을 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모르는 상태로 내버려 둔다. 이러한 알지 못한다는 태도는 심리치료와 전혀 이질적인 것은 아니다. 이제는 고전적이 된, 환자에 대한 자신의 선입견을 제거하라는 정신분석가 비온(Bion, 1967)의 충고를 숙고해 보라. 그는 기억과 욕구의 속박을 던져 버리고, 심지어는 치유하려는 욕구조차도 버리라고 충고한다. 치료자가 전문적 경험 속에서 성장할 때 방향성에서 더욱 유연해지고 폭넓어지게 된다고 제안하는 증거가 있다(Auerbach & Jonson, 1977: Schacht, 1991).
마음챙김 수련은 그 과정을 촉진하고 지성적인 의도를 넘어 '열린 마음을 유지하는' 데까지 그 과정을 확장시킨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마음챙김 수련―추론적 사고를 한쪽에 두는 연습―이 사고의 산물과 우리 자신을 동일시하는 방식에 대한 통찰을 가능하게 하는 알아차림의 수준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특히 마음챙김 명상에서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삶과 삶에 대한 우리의 생각(ideas) 사이에 연결될 수 없는 간격이 있음을 인식한다. 어떤 사람이 집중적인 마음챙김 수행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것은 낙하산 없이 비행기 밖으로 뛰어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바닥이 없다는 것을 알 때까지는 무서웠다."
알지 못하는 것은 매우 유용한데, 이는 치료를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이것이 사태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신비롭고 복잡한 우리 삶에 대해서 실제로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중략)
환자나 자신에 대한 고정된 관점을 포함해서 어떤 고정된 관점을 붙들고 있으면 괴로움이 생긴다. 고정된 위치는 끊임없이 과거가 되며 전개되는 흐름에서 견본으로 뽑은 순간들을 포착한 스냅사진이다. 안정된 것을 찾으려는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즉, 우리는 모르는 것의 불안감을 묶어 놓으려고 확실성을 찾는다. 일단 우리가 위치를 정하게 되면 이것을 방어하기 시작하고, 우리 개념에 맞추기 위해 실재에 대한 견해를 만들려고 시도한다.
마음챙김에 의한 '모르는 것'으로의 초대장이 우리의 모든 임상 수련을 포기하는 자격증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즉, 모든 것을 새롭게 바꾸는 것은 무책임하고 위험하다. 차라리 상상에 의해 생긴 확실성에 덜 확고히 집착하고, 개념에만 의존하는 것보다 개방되고 조율된 마음(충분한 임상 수련으로 강화된 마음)이 순간적 요구들에 훨씬 더 반응적이라고 신뢰하는 것이 배움의 과정이다. 마음챙김은 현재의 진정한 요구에 근거해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모든 도구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이며, 도구들이 유용하지 않을 때 그것들을 버릴 수 있는 자유를 준다.
출처 : 마음챙김과 심리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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