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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을 죄책감과 구별하기

psyglow 2025. 10. 31. 13:45

수치심은 죄책감과는 다르다. 수치심은 다루어야 할 휠씬 더 중요한 문제이다. 죄책감은 내담자가 뭔가를 잘못했다고만 느끼는 것이다. 죄책감을 느끼는 내담자는 종종 후회하고, 사과하거나 배상할 방법을 찾을 것이다. 아주 대조적으로, 수치심은 내가 무언가 나쁜 짓을 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나쁘다는 것이다(Lewis, 1971; Tangney, 1998). 수치심으로 활성화되는 ‘나쁨'이라는 감각은 내담자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의 지각된 철저한 조사에서 숨거나 이를 피하고 싶게 만든다. 그리고 죄책감과 같이 해결이나 수선할 생각이나 희망이 없다(Wells & Jones, 2000). 죄책감보다 더 일차적이고 전반적인 감정인 수치심은 자기 자신에 대한 전체적이고 모두를 아우르는 감정이다. 여기서 논의되는 해가 되는 혹은 해가 되는 혹은 ’핵심 수치심'은 일상의 악의 없는 자기의식이나 당황스러움의 경험과는 아주 다른 것으로, 내담자는 자신들이 본질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감정을 보고한다. 이 논의를 통해서, 이 수치심의 모든 형태에 있는 주요 감정은 경멸임을 기억하라(Miller, 1984; Tomkins, 1967). 수치심으로 고통받는 것은 진짜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결점이 다른 사람의 저주받을 판단이나 비판에 노출되고, 벌거벗겨지고, 취약하다고 느끼는 것이다(Spiegel & Alpert, 2000; Teyber & McClure, 2011). 내담자들은 심각한 수치심 반응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 그들의 경험을 말없이 의사소통하고 있을 수 있다("저의 마음은 텅 비어 있어요."). 때때로 그들이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저는 흉측한 물건 같아요." "저는 중요하지 않아요," "저에게는 무언가 문제가 있어요," 혹은 단순히 "저는 제 자신을 미워해요"이다. 최고조에 달한 수치심 반응은 고통받는 것으로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연민을 가진 상담자가 그와 함께 공유한다는 것이 너무 어렵다. 이러한 수치심으로 가득 찬 순간 동안에, 자기(the Self)가 완전히 파괴되고 있는 때에 어떤 내담자들은 죽고 싶다는 소망을 표현한다.

출처 : 상담 및 심리치료 대인과정접근

우울의 진단기준에 보면 죄책감이 있습니다. 다만 심리치료를 하는 분들이 유념하며 구별해야 할 점이 우울증에서 평가하는 죄책감이란 도덕적, 윤리적 위반을 한 것에 대한 순수하고 일차적인 죄책감과는 구별해서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죄책감 앞에는 부적절하거나 과도한이 포함되어 있지요. 만일 행동으로 인한 죄책감이 생기더라도 비난이 지나치게 자신에게 기울여져서 결국 수치심을 형성하게 된 것을 의미하지요. 또한 같은 기준에 무가치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 진단기준이 가리키는 것은 실질적으로 수치심인 것이지요.

심리치료에서는 수치심의 해결이 정말 중요한 과제며, 어쩌면 수치심을 스스로 소화해낼 수 있는 역량을 만들 수 있게 된다면 치료의 성공적인 종결이라 충분히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담자들이 정말 마주하지 않으려 하는 감정이 또한 수치심이기도 합니다. 마치 그 수치심을 마주하게 되면 자신이 없어질 것만 같은 위협에 방어하는 반응이 나오지요. 그러나 마주하지 않는다면 해결될 수 없는 것이 정신적인 고통이 되어버린 감정들이기도 합니다.

치료자들은 내담자들에게 자신에게서 올라오는 수치심을 안전하게 느끼고 바라볼 수 있도록 도우려 합니다. 우리 인간들에게 수치심이란 자연스러운 감정이 존재한는 것을 인정하면서 말이지요.

우리는 존재하고 싶으며 그것은 너무 근본적인 욕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너무 위협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수치심은 (내 마음이 만들어놓은 세상에) 내가 존재할 수 없다고 내면에서 외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경고 신호일 뿐이지 그 감정이 우리들에게 경험된다고 해서 진짜 세상에서 우리의 존재가치가 정말 상실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가슴으로 잘 내려와지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존재가 본인들 스스로에게 진정으로 허용될 수 있는 감각을 만들기 위해 저는 오늘도 상담실에 나가 내담자분들을 반갑게 맞이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