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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 모음

나를 책임지고 살아가는 것, 자기동정(self-pity) 아닌 자기자비(Self-compassion)로

psyglow 2025. 9. 17. 22:53

"왜 제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뭐가,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요?" 

내 불행의 원인을 찾으려 하는 내담자들의 호소입니다. 물론 심리치료에서는 필요하다면 그 원인탐구의 작업을 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어느 정도 원인 탐구가 되고 나서도 그 원인들에 집착되는 것이지요. 많은 내담자들이 종종 착각합니다. 내 지금 문제의 이유를 알게 된다면 다 해결이 될 것이라고요. 또는 지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이 제대로 이유를 찾아내지 못해서라고요. 애석하게도 심리치료에서 원인 분석만으로 심리적 곤경이 해결되는 경우는 실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심리치료 과정은 수용과 변화가 같이 있게 되지요. 특히 변화, 생각보다 더 많은 것에서 말입니다.

아래 발췌 글을 한번 볼까요.

누군가 정서적 고통을 많이 느끼는 이유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우울과 불안에 취약한 유전적 소인, 인지적 특징, 뇌의 구조적․생리적 기반, 부모의 양육 방식, 각종 스트레스와 그에 대한 대처 방식 등이 모두 상호작용한 결과입니다.

우울과 불안에 압도되어 있을 때는 이 모든 요소가 내 통제에서 벗어난 비극의 씨앗처럼 여겨집니다. '나는 그저 이렇게 태어났을 뿐이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재수 없게 나에게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누군가는 예민한 기질과 불안정한 환경을 물려준 부모를 원망하고, 누군가는 당면한 스트레스를 탓하며, 누군가는 바보 같은 선택과 대처로 인생을 수렁으로 몰아넣은 자기 자신을 비난합니다.

현재 경험하는 정서적 고통의 원인을 찾으려는 시도는 내가 바꿀 수 없는 요소와 과거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원인을 찾아서 제거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착각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통제권을 회복하고 싶은 환상적 욕구에서 비롯합니다. 이미 지나간, 내가 어쩔 수 없는 요인들을 탓하며 원망하는 동안에는 내가 겪고 있는 이 고통을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내 잘못으로 겪게 된 고통도 아닌데 왜 내가 책임을 져야 하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책임지는 것'을 마치 처벌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네 책임이야'라고 하면 '네 잘못이야'라고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책임의 의미를 너무 좁게 해석한 결과입니다. 우리는 내가 저지른 잘못만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을 책임져야 합니다. 내 인생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내 인생을 선택하고 가꾸어갈 자유와 권한이 나에게 있음을 인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 인생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면 먼저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불운한 사고로 하반신 마비와 함께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게 된 남성이 바꿀 수 없는 것은 사고를 당하게 된 자신의 운명입니다. 바꿀 수 있는 것은 사고 후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자신의 태도입니다.

가해자에게 합법적 보상을 요구하고 법적 절차를 마무리하는 것, 재활 노력을 하는 것, 사고 이전과 같이 신체 기능을 회복하지 못하더라도 현재의 몸으로 살아가려고 적응하는 것, 내가 겪은 고통을 피하지 않고 돌보면서 사는 것, 자기 일상을 잃어버리지 않고 가족과 함께 식사하고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으며 살기로 선택하는 것 등입니다.

물론 누구나 이러한 성공적 회복에 쉽게 도달하는 것은 아닙니다. 회복의 모양과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고 필요한 시간도 다릅니다. 혹여 '자기 인생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말이 '네가 그렇게 사는 건 네 잘못이야'라는 말로 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진실로 자기 인생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면, 그 누구도 남의 인생을 함부로 판단할 자격이 없다는 것 또한 알게 될 것입니다. 혹시 내가 아직 과거의 상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면, 그저 "아직 아프구나.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기 바랍니다. 시간이 흘러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고, 내 인생에 대한 책임을 다 하기로 마음먹는다면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분해 나가야 합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쪽을 선택하면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이 드넓게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더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라는 관점에 갇혀 있지 않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점점 많아지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출처 : 우울과 불안을 이기는 작은 습관들

색상으로 표기한 글들을 더 주목해보며 글을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저 글은 직접적으로 자비의 단어를 쓰고 있지 않지만 결국 결론은 자비의 태도로 매듭짓습니다.

출처 : Gemini

전문가를 따기 전 MBCT의 이론을 처음 접할 당시 자비란 단어가 그저 종교적 색채의 것으로만 와닿았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후로는 심리치료에서 자기 타당화나 자기 연민, 자기 돌봄의 가치가 중요하게 여겨지면서 자비란 단어가 충분히 익숙해지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많은 시간 스스로를 채찍질하는데 익숙해왔던 저 또한 자비란 개념이 중요한 건 알겠는데 모호하다고 여겨왔었지요.

얼마 전 마음챙김과 자비 워크샵을 들었습니다. 이은상 선생님께서 매우 소화되기 쉽게 자비의 개념을 전달해주셨습니다. 자비에는 ()적인 요소로 친절함, 따뜻함, 애정어린, 관대함과 같은 마치 포용해주는 엄마로부터 받게 되는 것이 있고, ()적 요소로 때로 과감히 용기를 내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 경계를 세우면서 요구할 수 있는 것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자비에 포함된 능동적인 역할, 즉 비(悲)에 있는 고통을 덜어주는 바를 더 일깨워주셨지요. 자기 자비란 나의 감정과 입장을 이해해주는 것을 훨씬 넘어서서 결국 내가 나를 위해 뭔가를 하는 것입니다. 마치 스님이 쓰러진 어떤 사람을 그저 안타까워하고 공감해주는 것만을 넘어서서 스님이 할 수 있는 어떤 행위, 예를 들면 물이라도 떠 주거나 들쳐 업어가 돌봐주는 것을 해주는 것이지요.

때로 이런 자기 자비를 거부하는 내담자들도 있습니다. 자신을 자비롭게 대하는 것을 껄끄럽거나 안 좋게 여기고 불안하거나 더 나아가 공포와 위협마저도 느끼는 자비불안(Fear of compassion)을 가진 분들이지요. 그러나 그런 분들도 결국 성공적인 심리치료가 되기 위해서는 이 자비불안이 경감되고, 해방되어야 합니다. 그런 작업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심리치료를 하는 치료자와의 견실한 라포와 일상의 마음챙김 활동들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