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가진 부부들의 모습이 자극적이고 노골적인 방식으로 TV에서 그대로 재현됩니다. 우리의 호기심과 안도감을 충족시키면서 말이죠. (프로그램 이름을 대면서 덕분에 자신의 부부관계를 돌아보게 되었다고 하는 말들이 요새 심리치료 장면에서 왕왕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런 프로그램들을 보며 사람들은 의아해하죠. “아니 저렇게까지 힘들게 하는데, 왜 헤어지지 못하는 거지?”
비단 부부관계에만 그치지 않고 심리치료 장면에서는 내담자의 이야기 속에 가족관계, 교우관계, 하물며 직장관계까지 역기능적인 관계를 다루지 못하는 issue가 자주 등장합니다. 그리고 치료자의 마음속에서도 비슷한 생각이 포착되지요. ‘왜 이 해로운 관계를 못 끊을까?’
건강하지 못한 관계에서는 힘의 불균형이 생깁니다. 학대자와 피학대자가 생기는 것이지요. 물론 이 관계 역할은 고정적일 수도 있고, 때에 따라 바뀔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마찰이 일어나는 장면에서 두 대상 간의 힘의 불균형은 일어납니다. 또한 건강하지 못한 관계에서는 서로에 대한 안정적인 예측과 그 예측 결과가 맞아떨어지는 안정감이 없습니다. 오직 극단적인 감정 분출과 종잡을 수 없는 감정 기복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그런 극심한 학대상황 뒤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잘못을 무효화시키려는 시도가 일어납니다. Bonding이 생길 만큼 종종 달콤한 보상을 주거나 마치 학대자가 죄책감을 겪는 듯한 악어의 눈물이 그것이지요.
이런 경험을 하며, 피학대자는 세상은 원래 위험한 곳이라는 신념을 default로 갖게 하고, 가끔 주어지는 덜 학대적인 경험 혹은 달콤한 보상에 낚이게 됩니다. 발췌한 글에서는 이것을 슬롯머신에 비유할 만큼 중독적인 것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관계를 중단하라는 조언은 말한 의도와 다르게 학대를 받으며 살라는 것보다 더 큰 공포를 일으킵니다. 이들에게는 학대받는 삶보다 ‘관계가 단절되는 것(세상에 홀로 남겨지는 것)’이 더 크게 와닿는 경험이기 때문이지요. 왜일까요? 인간에게 ‘연결감’이란 생존과 직결된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을 때 부실한 밧줄이라도 쥐는 게 나은 듯한 느낌인 것이죠. 특히 이런 피학대자들은 다른 경로로 연결감을 충분히 경험할 수 없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이런 ‘안전하지 않은 관계’에서라도 미약한 안전감을 느끼며 삶을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숨 쉴 구멍을 확보해두려 하는 것이지요.
“용기 내서 그 관계를 끊어내! 다른 관계를 찾아봐!” 이렇게 피학대자들에게 말하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말을 들었을 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신경계가 온 몸을 통해 위험하다고 부르짖는 반응에 휩싸이게 될 겁니다. 생존의 위협을 느낀 뇌의 비상경보 시스템은 객관적인 판단력마저 마비시켜 버리게 되고요. 이는 단지 피학대자들이 모자라거나 나약해서가 아닌 문제입니다.
신체가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결과라는 것을 이해해야만 빠져나올 수 있는 문제인 것이죠. 자신을 파괴하는 관계 안에서 기묘한 안전감을 느끼며 갇혀 있는 이들에게는 안전감의 확보를 전문적으로 지원해주는 심리치료밖에 답이 없습니다. 아쉽게도 주변 지지자원이 있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지지자원이 있다면 심리치료의 진전에는 플러스 알파가 됩니다.)
트라우마 유대(Trauma Bonding) : 트라우마를 경험한 후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형성되는 강력한 정서적 유대, 그 유대감에 중독되는 현상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학대나 방임을 겪으면, 우리의 신체는 그 반대편으로 달아나는 데 집중하도록 화학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를 안심시키는 인물이 학대자 본인일 경우, 우리 뇌는 그 사람을 '안전'과 연결한다. 뇌는 학대자가 남긴 부정적인 영향보다 그 뒤에 찾아오는 안도감이라는 긍정적 경험에 매달린다. 이로써 우리는 살기 위해선 그 학대자가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고. 그 감정은 흔히 '사랑'으로 오인된다. 이렇게 극심한 기복을 반복해 겪으면서 '사랑'의 감정이 최고조로 상승하고 심지어 마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일관성이 없는데서 오는 착시일 뿐이다. 심각하게 나쁜 순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좋은 순간이 상대적으로 더 강렬하게 부각되는 것임을 우리는 깨닫지 못한다.
트라우마 유대는 반복되는 학대나 방임 속에서, 가해자가 간헐적으로 우리를 '구조하는' 경험이 발생하면서 형성되는 호르몬 기반의 애착 관계다. 슬롯머신을 떠올려 보자. 슬롯머신은 불규칙한 상금을 미끼로 사람을 중독시키고 곧 더 큰 보상이 나올 것처럼 믿게 만들면서, 결국 당신이 어렵게 모은 돈을 모두 털어 넣게 한다. 이것이 바로 간헐적 강화(Intermittent Reinforcement : 보상이 일정하지 않고 예측 불가능하게 주어질 때, 특정 행동이 더욱 강화되는 심리적 특징)다. 간헐적 강화는 트라우마 유대의 핵심이다. 기쁨과 고양감이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불쑥 찾아오는 이 관계에서는, 언제 다시 애정을 받을 수 있을지, 그런 순간이 오기는 할는지 가늠할 수 없다. 그리고 마침내 그 순간이 닥쳤을 때의 안도감은 잭팟을 터뜨릴 때와 다르지 않다. 천국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출처 : 포닝(Fawning)
'심리치료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참아온 사람에게 함부로 '용서하라, 잊어라'고 조언하지 마세요! (0) | 2026.07.09 |
|---|---|
| 수용을 인내나 체념으로 착각한다면? (0) | 2026.06.22 |
| 마음챙김으로 현재, 닻 내리기 : 감정이 휘몰아칠 때 필요한 기술 (0) | 2026.04.28 |
| 심리치료에서 인식해야 할 Default Mode Network (0) | 2026.04.06 |
| 불안하고 우울한 사람에게 옥시토신을 분비시켜 줍시다 (1) | 2026.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