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치료에 어느 내담자가 힘겹게 옵니다. 어찌 왔는지를 살펴보고 탐색하다 보면, 꽤 가족의 문제 역동에 짓눌렸거나 혹은 학교폭력이나 따돌림 같은 관계외상의 피해를 소화되지 못해 자기 삶을 희생시키다가 온 분이죠. 근데 그 내담자들이 상담실에 발걸음을 옮기기까지의 과정이 녹록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정신적인 문제를 도움받아야 하는 이 내담자를 아니꼽게 보고, 나약함을 비난하며, 불필요한 짓을 한다고 불평합니다. 이런 주변 사람들의 말은 필요한 상담을 더 늦게 받게 만드는 장애물로 작용합니다.
요새 시대에 심리상담 받는 게 뭐 그리 있어선 안될 일처럼 주변에서 저런 반응을 했겠나 싶기도 하죠? 근데 실제로 상담실에서 새로운 내담자로 오는 case의 3명 중 1명 꼴로는 이런 상황을 경미하게 혹은 심하게 마주하고 온답니다. 심리상담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된 지금 조차도요. 그리고 제 경력 기준으로 볼 때 이런 분들의 거의 100% 상담이 필요하신 분들입니다. (사실 이런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그 주변인들이 더 상담에 와야하긴 하죠. 동기가 없는 문제가 있어서긴 하지만요.)
이런 분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주변에서 너무 쉽게 용서를 강요하고, 정신승리를 요구하는 걸 파악하게 되죠. ’네가 참고 용서해주는게 두루두루 좋지 않니?‘
상대를 위하는 척, '극복'이라는 대의로 포장된 이 말들은 당사자의 시선에서는 끔찍한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상처받은 이들은 갈등을 피하고 내면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타인에게 과도하게 맞추는 '순응(Fawning)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혹은 더 큰 상처를 피하기 위해 분노를 억누르고 그저 묵묵히 맞춰주는 길을 택했던 것이죠. 그런 이들에게 용서를 강요하는 것은,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앞으로도 이렇게 대해도 괜찮다'는 면죄부를 쥐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나아가 내담자 스스로 '이젠 정말 치료가 필요해'라고 외치는 영혼의 울림마저 평가절하하고 외면하게 만듭니다.
본인이 직접 겪어보지 못한 심리적 고통에 대해서 용서와 극복이란 거창한 메시지를 던지며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런 분들이 진짜 괜찮아지는 길은 그동안 억눌러왔던 억울함과 분노를 안전한 공간에서 충분히 경험하고 타당하게 이해받는 과정에서 시작됩니다. 즉, 제대로 충분한 분노를 접촉해야 하는 거죠. 그리고 용서와 극복은 그 중요한 작업을 다 이뤄낸 이후에 선택해볼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고요. 그리고 용서와 극복의 과정은 누군가 주입하거나 밀어붙여서가 아닌 내담자 자신에게 온전히 주도권이 있는 것입니다.

"그냥 용서하고 잊어버려." 표현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순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소리를 듣는다. 만약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이라면, 누구보다 먼저 그렇게 했을 것이다. 사실 순응하는 사람들은 갈등을 피하기 위해 늘 서둘러 용서하고, 잊고, 타인에게 자신을 맞춘다. 말하자면 우리는 ‘어떻게든 용서하기'의 대가다. "누구나 실수는 하게 마련이야"라 거나 "과거는 과거잖아"라는 말을 들으면. 마치 용서가 골인 지점이라도 되는 양 그쪽을 항해 돌진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수치심이 내면으로 더 깊이 파고드는 것을 막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 방식은 효과가 없다. 복합 트라우마의 맥락에서, 용서하고 극복하라는 메시지는 사실상 조작에 가깝다. 거짓된 우월감과 독이 되는 긍정성이라는 크고 모호한 포장지로 감싸 회피하는 것에 불과하다. 트라우마 피해자에게 "용서는 결국 너 자신을 위한 거야"라고 손쉽게 건네는 말은 특히 그렇다. 그게 정말 우리를 위한 것일까?
극복의 메시지 또한, 독이 되는 긍정성의 탈을 쓰고 악용될 수 있다.
"너는 정말 강한 사람이야. 그렇게 많은 일을 겪고도 다 이겨냈잖아."
“너는 다시 일어설 수 있어. 항상 그랬으니까."
이런 상투적인 말만 봐도 그렇다. 극복의 경험이 실제로 우리를 강하게 만들 수 있지만, 그것이 의무나 기대의 형태로 강요될 때는 우리의 목소리를 묵살하는 또 다른 도구가 되고 만다. 회복을 강요하는 것은, 순응하는 이들이 이미 갇혀 있는 악순환의 고리를 더욱 강화할 수 있다. '계속 퍼줘라. 계속 견뎌라. 계속 밀어붙여라’라는 메시지로 쉽게 변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회복은 고통을 무시하거나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버텨내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겪은 일을 온전히 느끼고, 소화하고, 통합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순응하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피하도록 조건화되었던 바로 그일 말이다.
표면적으로는 누군들 부정적인 감정을 내려놓고 싶지 않겠는가? 특히 순응 반응을 가진 사람들에게 ‘부정적 감정을 내려놓는다’는 생각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이들은 "갈등은 없어야 해. 절대로!”라는 신념 아래 감정을 누르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하지만 분노나 불쾌함, 좌절감을 느끼는 것을 스스로 허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내면의 진실을 마주할 수 없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느낄 수 없고, 자기주장을 하거나 새로운 대응 전략을 익히는 일 또한 불가능해진다. 그 결과 우리는 자기 자신과 타인 모두와의 연결이 끊긴 채 같은 자리에 고착된다.
나의 트라우마는 긍정적 사고방식에 관한 자기계발서를 열심히 읽는다고 치유되지 않았다. 나를 아프게 했던 모든 일을 ‘그냥 잊어 버리자'고 다짐하는 일은 나를 붙들고 있는 고착 상태를 지속할 뿐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분노를 느낀다. 부정적인 경험을 충분히 소화한 뒤 스스로의 선택으로 용서를 결정하는 것과, 억지로라도 용서해야만 내면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회유당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후자는 용서가 아니라, 부정이다.
출처 : 포닝(Faw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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