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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 모음

심리치료에서는 마음에 도전이 되는 일이 일어나야만 한다.

psyglow 2025. 5. 15. 09:12

심리치료를 하게 될 때, 초보 전문가 선생님들의 경우 상담작업 과정에서 내담자가 불안정해지는(흥분되거나 접촉되지 않으려 하거나 기력이 툭 떨어진 것 같은) 분위기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실은 치료자 입장에서는 늘 겪는 문제일지언정 어쩔 수 없이 긴장되고 당혹스러우면서도 쉬이 익숙해지지 않는 경험이기는 합니다. 비록 사람에 대해 깊이있게 배웠다할 손 치더라도 인지적으로 이뤄진 지식이 내 정서와 신체감각까지 잘 통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런 불안정한 분위기를, 내담자의 각성을 견디는 것이 치료자로서 어쩔 수 없는 사명이기는 합니다. 그리고 그 사명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런 상황이 왜 치료에서 벌어질 수밖에 없는가, 아니 왜 벌어져야만 하는가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치료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내담자에게 안전감이 필수적이지만, 치료자는 내담자가 강렬한 감정이나 자율신경 조절곤란에 직면했을 때 조절 능력에 도전함으로써 내담자의 능력을 확장할 수 있도록 도와줄 책임이 있다. 내담자의 정서적이고 생리적 각성이 '수용의 창'의 가운데, 예를 들면 낮은 공포와 불안 수준에 있으면, 치료 중에 트라우마의 잔존물 또는 정서를 동반한 애착 경험과 접촉할 수 없으므로 그들의 능력을 확장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만약 각성이 상한선과 하한선으로 구성된 '수용의 창'의 조절 범위(Schore. 2009a)를 크게 벗어나면. 경험은 통합될 수 없다. 조절 범위에서 성공적인 치료 작업을 위해서 내담자는 통제가 어려운 감정을 경험하는 동시에 안전감을 찾을 수 있어야만 한다. 이로 인해 창 자체가 확장될 수 있다. Bromberg(2006)는 치료적 관계의 분위기는 '안전하지만, 너무 안전하지 않도록(safe but not too safe)'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림 1.1

이 개념에 대한 설명과 '수용의 창' 가장자리에서의 치료 작업은 [그림 1.1]을 참조하라. 내담자의 각성이 '수용의 창'의 가장자리를 벗어나게 되면, 치료자는 내담자의 감정 또는 생리적 각성이 추가로 더 자극되지 않도록 신체적 활동을 계속하게 하거나 더 큰 조절곤란을 유발하는 다른 개입을 하지 않도록 한다. 치료자와 내담자는 각성이 창을 확장할 만큼 높지만, 통합을 희생할 정도로 높지 않도록, 창의 통제 경계선에서 치료 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내담자의 능력을 지속해서 평가해야만 한다. 

과거로부터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안전과 위험의 정교한 균형이 필요하다. 이 책의 내용과 치료법 그 자체는 필연적으로 기억, 강한 감정, 신체 반응, 생존 방어를 불러와서 일시적으로 내담자의 증상과 불안정감, 고통을 악화시킬 수 있다. 오래된 기억이나 습관 그리고 반응을 재활성화하지 않으면 과거를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과거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안전감이 필요하다. 예전에 일어났던 일을 상상하면서 그대로 다시 체험하는 수준까지 기억이 재 활성화된다면, 안전감은 사라지게 되고 과거를 해결하는 대신에 과거를 반복하게 된다.

책 : 감각운동심리치료

물론 이 사항을 내담자가 이 과정을 듣고 깨달을 수 있다면 더욱 치료작업에 들일 용기를 생성해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추상적이어서 일반 사람들에게는 직관적인 이해가 잘 끌어내지지 않고, 심리학적 이론이 탄탄히 갖춰져야만 저 개념이 쉽게 받아들여질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저 과정을 내담자에게 주입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치료자가 저 과정을 잘 상기하고 있으면서 내담자의 반응을, 그리고 치료관계나 내담자의 상태가 어려워지지 않을까 하는 심리적 불안감을 잘 견뎌내면서 그 결실로 내담자가 조절을 체험하고 "아! 심리치료를 받을 땐 이런 도전적인 경험이 필요하구나."를 깨닫는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 심리치료, 심리상담을 내담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과정이라고 잘못 오해하고 있는 일부 상담사들에게도 이 부분을 강조드리고 싶습니다. 내담자에게 심리적 도전을 경험시키지 않는 상담은 그저 편안한 말상대로서 기능할 뿐이란 점을요. 그 과정과 분위기는 아름다워보여도 결국 제자리에 맴도는 것이 될 수 있는 거지요. 요새 AI에게 말을 걸어서 상담을 해봤다고 하는 사람들의 상담 경험이 편안한 말상대로서 긍정적인 북돋움을 위주로 하는 수준이기는 한 것 같습니다. 물론 더 미래의 세상 일은 모르는 거니 장담하진 말아야겠습니다만 아직까지의 이런 미묘한 감각을 캐치해 작업하는 심리치료나 상담은 사람이 해야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