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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 모음

DBT의 핵심 Mindfulness 'How' 기술

psyglow 2025. 5. 20. 10:00

다음 세 가지 마음챙김 기술은 어떻게(HOW) 관찰하고 기술하며 참여하는지와 연관이 있다. 평가하지 않기, 온전히 하나씩 주의 두기, 그리고 효과적으로 행동하기(되는 일은 하기)이다. DBT에서 배웠듯이, 평가하지 않는다는 건 단순히 무엇이 좋다 나쁘다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부정적 판단을 긍정적 판단으로 바꾼다는 말이 아니다. 경계성 사람은 그들 자신과 타인에 대해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표현(이상화)하거나 극단적으로 부정적으로 표현(평가절하)을 하는데, 여기에서 이들이 좀 더 균형 잡힌 판단을 해야 한다기보다는, 대부분 경우에서 오히려 이러한 판단을 전부 내려놓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매우 미묘한 지점이지만 상당히 중요하다. 다시 말해, 가치 있는’ 사람은 언제든 ‘무가치’해질 수 있다. 대신에 DBT는 행동과 사건의 결과에 초점을 두어 강조한다. 예를 들어, 행동이 자신과 타인에게 고통스러운 결과를 야기하거나, 사건의 결과물이 해로울 지도 모른다. 판단하지 않는 접근은 이러한 결과를 관찰하고 행동이나 사건을 변화시키자고 제안할 수 있지만, 여기에 ‘나쁘다’는 꼬리표를 굳이 붙이지 않는다. 모든 것은 그저 있는 그대로이다. 혹은 마치 합리적 정서치료자는 곧 본인이 탄 비행기가 추락한다면 어떻게 할 건가라는 질문에 Albert Ellis가 “죽으면 죽는 거지.”라고 답했듯이, 모든 것을 단순히 그 자체로 본다.
마음챙김은 온전히 사람이 활동에 들여오는 알아차림의 질과 관련 있다. 두 번째 ‘어떻게(HOW)’ 기술에서 목적은 현재 순간 활동에 정신을 집중하고 알아차리는 법을 배우는 거고, 여러 활동으로 주의를 분산하거나 현재 활동을 하면서 다른 생각으로 주의를 분산하기와 다르다. 이러한 집중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경계성 환자가 가장 부족하다고 느끼는 능력인 주의 통제력을 필요로 한다. 경계성 환자는 과거 이미지와 생각, 미래에 대한 걱정, 갈등과 관련된 반추 생각 또는 현재 부정적 기분으로 주의가 분산된다. 오히려 온전하게 현재 걱정에 주의를 기울이고 걱정을 일부 해소하기보다, 다른 걸 하려는 동시에 걱정을 한다. 이 문제는 DBT 기술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 겪는 어려움 속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다. 환자는 한 번에 하나의 과제나 활동에 집중하고, 그 과제에 각성, 알아차림, 깨어 있음으로 동참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세 번째 '어떻게(HOW)' 마음챙김 기술인 ‘효과적으로’에는 환자가 간혹 특정 상황에서 실제로 해야 하거나 필요한 행동을 하기보다 무엇이 ‘옳은지’를 더 우려하는 경향을 줄이는 목적이 있다. 효과적이라는 건 ‘제 얼굴에 침 뱉기’와 반대된다. 우리 환자들은 이를 ‘이기는 게임 하기’ 혹은 ‘되는 일을 하기’라고 표현한다. 동양 명상 관점에서 효과적인 데 초점을 둔다 함은 ‘숙련된 수단을 사용하기’이다. 목적 달성의 중요성보다 앞서 '옳음'이라는 생각을 놓지 못한다면 물론 이는 비타당 환경 경험과 관련이 있다. 많은 환자에게 핵심 고민 중 하나는 자기 지각, 판단, 결정을 신뢰할 수 있는지, 다시 말해 자신의 행동이 맞기를 혹은 '옳기'를 기대할 수 있는지이다. 그러나 극단으로 가면 결과보다 원칙을 강조하면서 경계성 환자는 타인에게 실망하거나 타인과 멀어지는 결과를 겪는다. 결국에 우리는 어떤 경우 ‘항복’을 해야만 할 때도 있다. 경계성 환자가 ‘효과적으로’ 기술을 ‘굴복하기’가 아닌 능숙한 반응으로 여기게 될 때 옳음을 더 쉽게 내려놓는 것 같다.

출처 : 변증법적 행동치료

살아가면서 나를 생존하게 해주었던 많은 관념들과 삶의 방식들, 또 주변에서 주워 모았거나 때때로는 세뇌당하기도 한 Must적인 생각들은 오히려 내가 기능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게 되기도 합니다. 핵심 Mindfulness의 HOW기술은 이런 생각에 내가 융합되지 않고, 또 경험을 거부하거나 매몰되지 않은 채 적절히 거리 띄워 조망할 수 있게끔 하고 그로써 적응적인 삶을 도모하게 만드는 유용성을 지닙니다.
저는 저 글에서  "가치 있는 사람은 언제든 무가치해질 수 있다."라는 말이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개념이라 생각합니다. 심리치료를 하다보면 자신만의 답을, 또한 처한 상황에 적합한(fit) 답을 찾아가기보다 치료자인 저에게 자기 생각과 대처를 검증 받는데 급급한 것이 자동화된 이들을 종종 마주하게 됩니다. 물론 심리학이 인간의 적응과정을 탐구하는 학문이고, 또 임상심리학은 지독하게도 사람으로서의 적응을 가장 핵심으로 삼는 학문이기는 합니다만 그렇다해서 완전한 해결책을 늘 만들어낼 수 없는 노릇이지요. 실은 정말 이보다 더할나위 없는 완전한 해결책이라 여기며 치료자가 제시할지라도요, 치료를 해보다보니 이것만은 확실하더군요. 받아들이는 자가 참 중요하다는 점을요. 그리고 치료자는 당사자가 될 수 없는 한계를 꼭 마주하기 마련이며, 자신의 문제해결능력이 만능이 될 수 없다는 진실에 가까운 이치를 받아들이며 겸손해야 한다는 점도요.
또 Linehan이 제시한 저 효과적으로 행동하기 개념도 치료장면에서 많이 유용하게 받아들여집니다. ACT 이론을 기반으로 치료하는 선생님들의 "그래서 유용하던가요?" 질문과도 연결해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되는 일을 한다는 저 어구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좋게 보였습니다. 참 우리 인간들은 '옳기'를 기대하는 덫에 쉽게 걸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옳은 것도 세상을 살면서 중요한 개념이긴 합니다만, 저는 심리학이 옳은 것을 추구하는 것보다 적응을 그리고 유연성을 추구하는 학문이라 그게 제일 마음에 듭니다. 또 요새의 긍정심리학 물결에 따라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나를 찾아가는 탐구를 지지해주는 점도 기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