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 보기 싫은 ‘꼴’들을 안 보고자 눈을 실명시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내가 듣기 싫은 ‘소음’들을 안 듣고자 귀가 먹게 해버리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이렇게 물어보면 다들 일단 질문 자체를 어이없어 할테지요. 근데 이걸 감정으로 이렇게 바꾼다면요.
“내가 느끼고 싶지 않은 ‘힘든 감정’들을 안 느끼기 위해 감정을 느끼는 통로를 차단시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로요. 뭔가 어?! 하게 되죠?
우리는 심리적 고통에 휩싸여 있으면 그 신호로 겪는 감정적 경험을 너무 불편해하고, 의식적으로 차단을 하려 하게 됩니다. 감정표현불능증(alexithymia)이 이의 한 유형이지요. 또 어떤 내담자들은 이런 말들을 하기도 합니다. 긍정적인 감정만 느끼고, 부정적인 감정은 느끼고 싶지 않다고요. 그러나 우리의 감정 채널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같은 곳을 통과하게 만들어져 있으니 그건 어렵고요. 더불어 저 말 자체가 부정적인 감정 경험 자체를 “잘못, 불필요”로 여기는 감정에 대한 역기능적인 관념들이기도 한 것이지요.
기꺼이 경험하기가 왜 필요한지는 이 책에서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기꺼이 느끼지 않으려는 만성적인 경향의 부작용 중에서 가장 슬픈 것은 우리가 무엇을 피하고 있는지를 인식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만일 자신이 느끼는 것을 만성적으로 회피한다면, 결국에는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게 된다. 이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슬픈 일이다.
첫째, 그 한 가지 결과로서 삶에서 실수하기가 휠씬 더 쉬워진다. 예를 들어, 당신의 감정은 새로운 파트너가 안 좋게 헤어진 이전의 파트너들과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는데도, 당신은 이러한 감정의 신호를 놓침으로써 또 다른 좋지 않은 관계를 시작할 수 있다. 또는 당신에게 경고를 보내는 불편한 감정들을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주거나 건강을 해치는 직업을 유지할 수 있다. 마치 통증을 느끼는 감각을 상실한 사람처럼, 경험을 회피하는 사람은 뜨거운 난로 위에 심리적인 손을 올려놓고는 손이 타들어 가도록 그냥 놔둘 수 있다.
둘째, 경험을 회피하는 사람은 실제로 사건에 대해 긍정적으로 든 부정적으로든 더 강렬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Sloan, 2004). 이들은 남들보다 더 예리하게 느껴질 수 있는 고통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기 위하여, 남들보다 더 예리하게 느껴질 수 있는 기쁨에서도 멀리 떨어져 지내려고 한다.
탈융합이 당신의 생각이 변화될 것임을 의미하지 않는 것처럼, 수용은 당신의 감정이 변화될 것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변화가 조금이라도 가능하다면, 우리가 수용과 탈융합의 자세를 지닐 때 변화의 가능성이 더 커지는 듯하다. 예를 들어, 당신이 건강하지 않은 관계에 빠져드는 것을 피할 때, 마치 난로에서 손을 빼냄으로써 통증과 손상을 피하는 것처럼 당신은 매우 실제적인 방식으로 고통과 손상을 피한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먼저 당신이 그 고통을 느껴야만 하며,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손을 빼내지 못했을 것이다.
뜨거운 난로와는 다른 종류의 고통이 있다. 이는 건강한 행동에 반드시 수반되는 형태의 고통이거나, 혹은 현재의 상황에 기초하지 않고 본질적으로 역사적이며 조건화된 형태의 고통이다. 격렬한 운동 후에는 근육이 아플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면 피곤할 것이다. 과거의 상실을 회상하면 슬플 것이다. 관계에 자신을 개방하면 취약함을 느낄 것이다. 세상에 관심을 가지면 다른 사람이 상처받고 있음을 알 것이다. 대부분의 심리적인 고통은 이러한 유형인 듯하다.
불안은 대개 실제적인 위험에 토대를 두지 않는다. 우울은 대개 객관적인 현재 상황에 근거하지 않는다. 현재의 상황에 직접적으로 근거하지 않고 본질적으로 역사적이며 조건화된 감정은 이와 같다. 이러한 감정들의 일부는 행동에 대한 좋은 안내자가 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학대를 겪은 사람은 현재의 파트너가 민감하고 친절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친밀감을 두려워할지 모른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두 번째 이유에서 수용과 기꺼이 경험하기가 요구된다. 즉, 그것이 없다면 건강한 행동은 불가능하다.
이 책에서 말하는 '수용'이나 '기꺼이 경험하기'는 쉽게 바꿀 수 있는 상황이나 사건, 행동을 수용하라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지금 누군가에게 학대를 당하고 있다면, 요구되는 것은 학대의 수용'이 아니다. 이때 요구되는 것은 당신이 고통 중에 있음을 수용하는 것, 이에 따라 상기된 힘든 기억을 수용하는 것, 그리고 학대를 멈추기 위해 필요한 단계를 밟는 데서 오는 두려움을 수용하는 것이다.
출처 :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
"잘 느껴봅시다, 충분히 머무르고 느껴보세요. 그 감정은, 그 감각은 뭘 말해주고 있을까요?" 치료자는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너무 불편할 경험들을 다시 겪도록 유도할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당신을 다시 힘들게, 그저 고통스럽게 만들려는 것이 아닙니다. 경험을 알아차리게, 그래서 미처 못 느끼고 못 이해한 것을 발견하고, 재구성하며, 그로써 그 경험을 온전히 소화할 수 있게 돕기 위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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