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체계(action systems) : 특정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진화한 심리생물학적 체계. 후성적으로 프로그램화되어 있고, 고전적인 조건부여, 자기 조직화, 자기 안정화에 민감하고, 본질적으로 적응적이다.
행위체계는 각각 고유하지만 서로 의존하면서 연결되어 있으며 보완적이다. 일반적으로 여러 행위 체계는 동시에 유발되어 서로 관련 있는 다양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협력한다. 행위 체계의 결합을 경험하는 일은 트라우마화된 사람에게는 부족한 고차원적인 통합 능력을 요구한다.
우리가 성장함에 따라 통합 능력을 키우는 일은 다양한 행위 체계의 과제와 목적을 동시에 수행하고 성공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복합적인 행위를 실행함으로써 상호관련성을 ‘구축’하는 것을 수반한다. 예컨대, 결혼생활에서 일 때문에 파티에 참석하는 것과 같은 활동은 애착체계(접근)와 탐험체계(직업적 노력)와 놀이 체계(오락), 사회성 체계(결혼생활 외의 관계 형성)와 같은 다양한 행위 체계의 목적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출처 : 트라우마와 몸
Ogden의 8가지 행위체계를 아래 표에서 살펴봅시다.
위의 표처럼 이 행위 체계들은 두 개의 큰 범주에 포함됩니다. 그리고 이 두 범주는 상호 억제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방어체계가 활성화되면 다른 행위 체계와 관련된 일상 활동은 중단되고, 위험이 지나가면 일상활동이 재개됩니다. 그러나 세상을 위험하고, 대비 및 대응해야 하는 것으로만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방어체계만이 강하게 너무 자주 활성화되게 될 경우 일상생활에 적절히 참여하여 적응적인 삶을 도모해나갈 수 없게 됩니다.
방어 체계 – 자극을 위험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인식할 때마다 활성화됩니다. 방어행동이 효과를 발휘해서 위험에서 벗어나면 우리는 보통 안도감과 함께 승리감을 느끼고 종래에는 유능감을 가지게 되는데요. 그러나 방어행동이 비효율적이었다면, 우리는 깊은 패배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도 효과적이지 않은 방어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어떤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입은 당시에 취한 방어반응이 효과적이지 않았거나 부분적으로만 효과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반복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즉 이전의 방어반응이 자동적으로 튀어나올때, 이들은 현재상황에 맞게 행동경향성을 수정하지 못하는 것인데요. 그렇기에 이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방어 경향성을 주의깊게 관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됩니다. 또한 심리치료에서는 세상을 늘 위협적이고 미리 대비해야 하는 것으로 보려는 왜곡되어 있는 관점을 조정시킵니다. 안전감이 회복되지 않으면 결국 일상활동으로의 복귀는 제대로 이뤄질 수 없을 테니까요.
애착 체계 – 근접성, 안전한 피난처, 안전한 기반이라는 세 가지 진화적 욕구로 활성화됩니다. 애착은 생존을 보장하는 중요한 역할 때문에 방어체계와도 겹쳐져 있고, 근접성과 안전한 피난처에 대한 욕구가 이에 연관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러면서도 안전한 기반이라는 배경 속에서 조절 능력을 습득하는데 필요한 안정감을 경험하고, 이는 다른 모든 행위체계의 개발을 용이하게 하면서 일상생활의 적응을 도모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기에 애착관계에서의 학대와 외상 경험은 다른 누군가로부터 겪은 학대나 외상 경험보다도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또한 애착관계가 직접 학대와 외상을 주지 않았더라도 혼자 다룰 수 없는 어려움을 방치받게 된 경험은 애착체계를 방어기능 위주로만 작동시키게 만들 것입니다.
탐험 체계 – 판크세프(Panksepp)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필요로 하고 갈망하고 희망하는 것을 찾아 몸을 움직이도록 동기 부여하는 “먹이 찾기/탐험/조사/호기심/흥미/추정/추구 체계로 설명했습니다. 현대에는 호기심과 배움의 추진력으로 교육 및 직업과 관련된 활동 기반을 제공합니다. 특히 모든 행위 체계의 목적 실현과 연관되어 있다는 고유의 특성 때문에 다른 행위체계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 체계입니다. 이 체계는 안전이 확실히 보장되지 않으면 작동되지 않습니다. 또한 영유아기의 애착 체계에 많이 의존하는 면을 보입니다. 이 글을 보며 우리는 공부를 하라고 채찍질하고 남과 비교하며 더 나아가서는 공포를 조성해 밀어붙이는 부모를 떠올려볼 수 있겠습니다. 부모가 강요하며 바라는 것은 내 자식이 공부를 잘 하는, 이 탐험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라고 하는 것이 될텐데요. 근데 그 행동은 자식 입장에서는 공부를 잘 하게 만드는 탐험체계가 '절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만들게 되는 것이지요. 막 밀어붙였더니 이만큼 성취해냈는데요라고 누가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 이렇게 이야기하겠죠. 그건 그 아이가 최악의 환경에서도 능력적으로 그만큼 뛰어남을 보였다는 것이 될텐데, 만일 자기주도학습(스스로 동기를 가지는 것을 포함한)을 했다면 더 성취했을 잠재력이 있는 것입니다가 심리학자들의 결론이 되는 것이지요. 뭐 물론 그 성취가 부모가 바라는 수능은 아닐 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탐험체계가 잘 기능했다면 뭐가 되었든 이 세상에서 자기 잠재력을 발휘하는 무언가에 성취를 해냈겠죠. 그러니 자기 불안에 휩쓸려 7세 고시니 4세 고시니 하는 부모들의 기사에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게되죠. 놀이와 탐구력을 박탈당한 아이들이 과연 제 역할을 할 내적자원을 적절하게 성숙시켜나갈 수 있을까요?
에너지 조절 체계 – 활동과 휴식 상태에서 최적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 외에도 식사, 음주, 수면, 체온, 배설, 산소 흡수, 신체활동, 부상이나 통증에 대한 반응을 조절합니다. 평생 항상성을 유지하게 해주는 이 기본적인 생존지향적 기능의 각성은 만족을 즉각적으로 충족시키거나 한시적으로 뒤로 미루는 목표지향적인 행동을 가능하게 합니다. 트라우마화된 사람들은 에너지 조절 욕구에 둔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중독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내담자가 그러한 욕구를 알리는 신체감각을 알아차리고 적절하게 충족시키는 행동을 개발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개인적으로 저 자신이 이 체계의 발달이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신체화 증상이나 음식 탐닉 증상이 있다 보니까요.
돌봄 체계 – 애착체계와 밀접히 연관되며, 상대의 고통에 상보적인 조절을 제공함으로써 자신을 조절하게 합니다. 돌봄 행동은 성장단계마다 달라지며, 부모-자녀 간의 돌봄 행동은 친구 간, 성인 자녀-늙은 부모 간의 돌봄 행동과 다릅니다. 어떤 내담자는 자신이 돌보아야 할 대상에게 적절한 돌봄을 제공하기 위해 치료적 도움을 필요로 하기도 합니다. 다만 돌봄이 이타적인 속성을 가진 체계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손상하면서까지 이것이 기능하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 돌봄의 제공자는 매정하게 말한다면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해 돌봄을 주게 되는 것이고, 이 한계선을 넘어선 돌봄은 결국 누군가가 꼭 손상되게 되는 것이거든요. 과하게 돌봄을 기대한 자가 좌절하거나 무리하게 돌봄을 주던 자가 나가 떨어지는 것처럼요. 주변 사람에게 돌봄을 무리하게 요구하는 유형의 성인 내담자들은 상대방의 입장을 최소한으로 가늠하지 못한 채 자기 상태에 더 빠진 채로 호소만 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요. 결국 그 돌봄은 부모가 어린 자녀를 대하는 것같이 완전한 방식처럼은 되지 못하게 됩니다. 물론 그 내담자들이 적절한 시기에 받아야 할 돌봄이 부재했다는 사실은 맞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돌봄을 지금 주게 될 때의 '시기나 대상이 달라졌다는 현실의 중요한 차이'는 간과될 수 없는 문제인 것이지요. 몇 번은 그것까지도 다 포용해 줄 수 있기도 하겠습니다만 생각보다 만족이 쉽게 오지 않기에 한계선을 필히 넘을 수밖에 없게 되겠지요. 그래서 심리치료가 그 돌봄을 복구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고요.
사회성 체계 – 애착 체계보다 더 넓은 것을 대상으로 하기에 친구관계, 친밀한 남녀관계, 동료관계, 단체와의 관계처럼 다양한 것이 되며, 사회성 행위 체계는 ‘무리’나 ‘집단’ 속에서 기능해야 생존 가능한 인간에게 실질적으로 생존의 토대가 됩니다. 사회적 집단은 방어적인 선택을 할 기회를 늘려줄뿐 아니라 우리를 보호할 ‘마을’을 제공하고, 음식물과 주거 공간을 필요로 하는 에너지 조절욕구를 충족시키고, 탐험과 놀이를 촉진하고, 남녀 관계 형성, 성관계, 번식을 통해 애착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관계를 회피하고 싶어라하는 사람들 중에는 요즘같은 비대면이 가능한 사회에서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아도 살 수 있을 것처럼 여기기도 하지요. 하지만 천만의 말씀을요. 그 비대면이 움직이게 하는 것 또한 우리 사회라는 사실을 간과한 생각이겠죠. 뿐만아니라 외로움이란 감정이 인간과 같은 포유류에게는 생각보다 강렬하다는 것을 시간이 갈수록 체감하게 될 것이거든요. 어느 순간 그 외로움을 어떻게든 벗어나야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즈음에는 사람들과 맞부딪히며 익혔어야 할 감각과 경험, 관념, 대처방식 등이 나에게 모자라 있게 될 것이고, 또 그 상황이 사람들을 못 만나는 늪으로 안내하게 될 것이니까요. 그래서 심리치료를 하는 사람들은 관계 자체를 회피하라고 절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놀이 체계 – 탐험과 동일 범주로 논의되지만 실질적으로 탐험의 뇌 회로와 놀이의 뇌 회로가 다르며, 자발적이고 비전형적인, 본질적으로 즐거운 활동이고, 걱정이나 심각한 감정이 없는 활동입니다. 피질이 발달하며 농담과 말장난, 정신적 유머, 코미디, 오락과 같이 덜 신체적이면서 인지적이고 복잡한 놀이가 다양하게 등장하게 됩니다. 판크세프에 따르면 놀이행위 체계의 특징은 웃음이라 했습니다. 안전이 담보되어야만 체계가 작동하기 때문에 경쟁심과 두려움은 개인의 놀이능력을 훼손합니다. 놀이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심신의 쇠약을 초래합니다. 노는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빈곤과 고립의 삶을 산다는 것을, 그리고 연결과 정상적인 발달을 저해하는 무미건조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설명을 보고 한번 깨달아보면 좋겠습니다. 즐거워하던 활동을 내가 일로 받아들이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네, 놀이체계와 탐험체계는 회로가 다르니 회로가 옮겨가게 되겠지요. 그러니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면 행복하지 않을까는 일면으로는 다소 순진한 말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또 다른 측면도 생각해봅시다. 아이가 놀고 있는데, 그 자율성과 웃음을 제한하면서 "이렇게 놀아"라고 강요하는 부모나 보호자라면요. 그럼 아이는 그걸 거부하거나 거부하지 못하면 그 순간부터 다른 체계를 사용하여 놀이와 '유사'해보이는 활동을 하게 되겠지요. 아! 문득 내 아이가 어두컴컴하고 dark한 분위기로 그림을 그리지 않게 심리치료에서 설득해달라고 고등학교 자녀를 데리고 왔던 한 엄마가 생각납니다. 농담같죠? 진짜 있었던 일입니다.
성 체계 – 성인의 애착 관계는 근접성의 제공, 안전한 피난처, 안전한 기반이라는 애착의 세 가지 기준이 부모-자녀의 애착관계와는 다르게 상호 충족됩니다. 이것에는 구애, 유혹, 한 쌍의 결합, 짝짓기 행위 경향성, 성 체계가 자극받을 때 모든 포유류가 보이는 고정된 행동 패턴 등이 있으며, 사회성 체계와 돌봄 체계와 같은 따뜻함이 꼭 관련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막 관계를 시작한 연인에서 시간이 지나며 애착 관계가 형성되면 행동은 더 정교한 돌봄 행동과 애착 행동과 사회성 행동을 포함하고, 연인들은 상대방의 각성을 증가시키는 방향에서 서로 완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성 체계만으로는 연애를 하고 결혼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이지요. 내가 누군가에게 성적으로 끌렸을 때, 그것만으로는 절대 저 상대방과의 성공적인 애착관계를 확증할 수 없습니다. (금사빠 NO!) 즉, 애착관계에는 상호희생이 필요하며, 그것의 역사가 쌓여야 하고, "두 사람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아니라 "두 사람은 결혼해서 서로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려고 무던히 애쓰며 살아갔습니다."가 맞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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