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나무의 가치는 그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어떤 행동이 공동체에 보탬이 되었는지 아니면 해를 끼쳤는지는 시간이 흐른 뒤 그 결과가 증명해준다. 따라서 어떤 행동을 판단할 때는 단편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그것이 남긴 결과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모든 행동은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히며, 바로 그 자리에서 공동체의 필요에 얼마나 부합하는지가 낱낱이 드러난다. 세상에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인 질서가 있고, 가치 판단의 척도 역시 그곳에 존재한다. 개인의 행동이 그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지, 아니면 어긋나는지는 머지않아 분명해진다.
다행히 일상생활에서 이처럼 복잡하고 거창한 판단이 필요한 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다만 사회의 거대한 흐름이나 정치적 움직임처럼 그 결과를 미리 명확하게 내다보기 어려운 문제에서는 크고 작은 논란이 생길 수 있다. 그래도 사회의 삶이든 개인의 삶이든, 마지막 순간에는 언제나 결과가 스스로를 증명한다. 무엇이 참으로 유익했고 무엇이 옳았는지는 지나온 흔적이 말해주는 법이다. 과학의 눈으로 바라보면, 모두에게 선하고 유익한 것은 삶이 던지는 문제에 대한 가장 참된 해답이어야 한다.
삶의 문제는 지구와 우주,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만들어 내는 질서 속에서 생겨난다. 객관적이고 인간적인 우주의 조건은 마치 정답이 어딘가에 숨어 있는 수학 문제처럼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다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문제를 항상 완벽하게 풀어내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내놓은 해답이 옳은지 그른지는 오직 그 문제에 주어진 조건들에 비춰봐야만 판단할 수 있다. 더 아쉬운 점은, 어떤 해답의 의미나 진실이 너무 늦게 밝혀지는 바람에 이미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을 시간이 남아 있지 않을 때도 있다는 사실이다.
삶의 구조를 논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원인에서 출발해 어떤 흐름으로 이어져왔는지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 눈앞에 문제가 닥치면 그저 당황할 뿐,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다루기보다는 자신이 뭔가 단단히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고만 자책하며 움츠러든다.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는 바른 길에서 벗어나 방황할 때, 자신이 겪는 문제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아픈 경험에서도 교훈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이에게 자신의 삶을 서로 동떨어진 우연한 사건들의 모음으로 바라보지 않도록 가르쳐야 한다. 자기 삶의 처음과 끝을 하나로 길게 이어지는 실타래처럼 연결해서 바라보도록 도와야 한다. 그 어떤 사건도 아이의 삶 전체와 떼어놓고는 이해할 수 없다. 모든 일상과 사건은 그 이전의 수많은 일과 긴밀하게 이어져 있을 때 의미를 갖는다. 아이가 스스로 그 연결 고리를 이해하게 되면, 자기 삶이 어쩌다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갔는지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출처 : 우월한 열등감
『우월한 열등감』이란 책은 교육서로 쓰인 책이지만,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자신의 심리 과정을 성찰하고 주요한 관계 대상의 마음을 읽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아들러는 이 책에서 인간의 심리가 어떤 생애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지, 문제행동 뒤에는 각자 나름의 심리기제가 있다는 점, 그리고 환경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그가 밝힌 시각을 지혜로서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에 대해 저절로 올라오는 판단들과 틀(frame)로 작용하는 신념 체계를 내려놓고 자신의 행동과 결과 사이의 관련성을 단순하게 보기보다 더 넓은 맥락을 살펴보는 것 말입니다.
제가 밑줄 친 부분만 보면 단순한 결과론처럼 오해할 수 있을 텐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들러의 핵심 메시지는 단편적인 행동과 즉각적인 결과에 갇히지 말고, ‘삶이라는 긴 실타래(전체 맥락)’ 안에서 원인과 결과를 살피란 것입니다. 과학적인 시각으로 결과를 보되, 결과가 주는 의미를 잘 살펴서 다시 과정과 맥락을 되짚어보라는 권유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과정에 대해 의미화하고 지혜를 얻어낸다면, 다음의 상황에서는 결과가 나오기 전에 더 효용적이고 고려가 잘 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래의 그림처럼요.

마뜩잖은 사건이 벌어지면 마음에서 죄책감과 수치심 같은 불편한 감정이 자동으로 일어납니다. 그리곤 '나는 틀렸어'라는 신념에 스스로를 동일시해버리는 개념화된 자기(Self-as-Content)의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저 '행동=나'로 묶여버리는 순간 경험은 배움의 통로가 되지 못하고 처벌이 되며, 심리적 방황으로 연결됩니다.
이 때 잠시 멈추어 알아차리고 마음챙김 모드를 일으켜 맥락적 자기(Self-as-Context)로 물러설 수 있으면 사건을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조건, 그리고 미래의 방향이 얽힌 선상에서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아들러가 언급한 ‘자기 삶의 처음과 끝을 하나로 길게 이어지는 실타래처럼 바라본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자책의 시선을 거두고 내 행동을 삶의 맥락에서 넓게 조망할 수 있게 되면, 비로소 나 자신이 진정으로 향하고자 하는 가치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방향성을 잃지만 않는다면, 지금의 행동이 원하는 삶의 경로에서 살짝 벗어나더라도 담담히 수용하며 다시금 전념행동으로 방향을 재조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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