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대한 저항과 위협적인 자극에 대한 방어는 삶의 한 방식이다. 그것은 우리가 낯설고 놀라운 아이디어들에 적응하기 위해 새로운 인지 구조를 구축할 시간을 벌어 준다. 그것은 우리가 이질적이고 혼란스러운 관점들에 익숙해지려고 할 때 숨 돌릴 틈을 준다. 그것은 모든 유기체 조직의 부분을 이루고 있는 적응기전이다. 그것은 우리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응을 고안해 내도록 준비시킨다.
이 순간 그리고 매 순간 우리의 방어체계는 대뇌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제시된 후 우리가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은 그것을 깎아내리거나 부적절하게 만들 방법을 찾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를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면, 이 새로운 정보를 통합시킬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하고 오랫동안 의지해 왔지만 이제는 못쓰게 된 계획들을 깨끗이 치워 버려야 하는 수많은 일들이 우리 앞에 놓이게 된다.
치료를 하다 보면, 좋게 말하면 내담자가 나아졌으면 하는 애정과 기대에, 나쁘게 말하면 저의 조급한 욕심에 내담자를 답답해하고 변화에 대한 저항을 타당화(validation) 해주지 못하게 될 때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도 알아차리고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되는데요. 결국 그동안의 자기를 살아내게 만들었던 과거의 비효율적인 대처기제들과 신념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내담자에게는 상실감과 부담감을 자극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다르게 생각하기와 전략 바꾸기가 저런 이유들로 마음만큼 잘 되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겠습니다.
또한 치료에서는 관계 기대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상대방은 마치 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기대해줄 수 없으며, 그것은 치료자 앞에 놓인 내담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끔 치료를 하다 보면 책에서 제시된 것처럼 이런 내담자의 기대로 치료자로서 당혹감과 염려를 종종 마주하게 됩니다.
치료 관계에서 생기는 가장 흔한 문제는 내담자가 치료사의 기대에 따르지 않을 때뿐만 아니라 치료사가 내담자의 기대에 따르지 않을 때도 일어난다. 대부분의 내담자는 결국에는 치료사에게 실망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비협조적인 내담자는 가장 많이 실망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비현실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다음의 것들을 충족시켜 주기를 바란다.
- 모든 것을 알고 무엇이든 할 수 있기
- 끝없는 인내심을 가지기
- 그들이 다른 사람에게 가하고 싶었던 모든 모욕을 당해 주는 것으로 돈을 받는 종(servant)이 되기
- 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모든 고통을 사라지게 하는 비법 가지기
- 그들에 대해 생각하느라 우리의 자유 시간을 몽땅 쓰고 그들이 말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만날 수 있도록 우리의 일정과 사생활을 없애 버리기
- 그들이 약속을 잊는다 해도 전혀 불편해하지 않고 그들이 청구된 비용을 지불할 수 없다 해도 화내지 않기
고통으로부터 보호하고 구원할 수 있는 전능한 부모의 자리에 치료사를 올려놓는 내담자의 무의식적인 욕구에 대해서 처음으로 자세하게 말한 것은 프로이트였다. 어느 날 그들이 이 '이상적인 부모'가 전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들은 우리가 실수하는 것을 알아차린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때로는 그들조차도 우리의 조바심, 지루함, 좌절감을 느낄 수 있다. 우리를 비난하기 시작할 때, 그들은 간접적인 방법을 가장 흔히 사용한다. 이것은 우리가 그들의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에, 우리가 충분히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를 벌주는 것이다. 그들은 늦게 오거나 혹은 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들은 기본적인 요구에도 임하지 않거나 순전히 앙심을 품고 퇴행하는 듯 보인다(Strean, 1985).
치료에서 부딪히는 많은 문제는 파트너 한 사람 또는 두 사람 모두가 상대의 행동에 실망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치료사는 내담자가 일상적인 행동 규칙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짜증이 난다. 내담자는 치료사가 자신이 기대했던 사랑 많고, 관대하고, 현명하고, 마술적인 사람이 아니어서 화가 난다. 그러므로 중요한 작업은 한 사람이라도 안전감이나 정직성을 양보한다는 느낌 없이 이 과정에 참여한 두 사람 모두가 상대에게 요구하는 것을 타협하는 것이다.
그래서 랭스(Langs, 1989)는 치료사들에게 매 회기를 '바라는 것 없이, 기억 없이, 이해 없이' 접근하라고 경고한다. 우리는 선입견을 비워 낸 후에만 새로운 통찰을 가져오는 생기 넘치는 관점을 가지고 내담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다.
출처 : 연민 어린 치료
결국 치료관계는 두 사람이 같이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누구 하나만 Key를 쥐고 책임감을 가진 것이 아니지요. 비유하면, 치료자와 내담자가 각각 키를 쥐고 있고, 둘이서 같이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롯이 따뜻하기만, 다 품어주기만 바라는 내담자들에게는 치료자에 대한 실망과 좌절은 필수로 경험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처음 치료의 구조화에서 한계설정도 중요한 것이며, 이러한 저항의 issue가 일어날 때 치료자는 내담자를 충분히 열린 자세로 기대를 알아가고자 하며, 무리한 기대를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되 서로를 해치지 않는 선의 타협점을 찾아가려 합니다.
더불어 치료자는 전능감을 가지려는 자기 마음을 늘 경계합니다. 치료자가 신일 수 없고, 인간임을 계속 보여줍니다. 실수가 날 때에도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자세를 취하지만 그런 실수 상황이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처럼 굴지 않습니다. 이는 내담자가 치료자를 과한 기대로 바라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자기 이해와 자기 타당화를 내담자에게 모델링하는 과정이 되기도 해서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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