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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 모음

각성의 세 영역, 그리고 수용의 창(window of tolerance)에 대하여

psyglow 2025. 4. 11. 22:22

우리는 자극이 있을 때 세 가지 각성 영역 중 한 군데에 머무르며, 그것을 처리하게 됩니다. 그림의 각성 영역을 살펴보았을 때, 각성이 지나치게 높아진 과각성 상태, 각성이 지나치게 낮아진 저각성 상태, 그리고 각성이 필요한만큼 잘 조절되고 있는 수용의 창(window of tolerance)에 머무는 상태로 나뉩니다.

과각성 영역에 머무는 중인 사람은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며, 지금 상황을 위험하고 투쟁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빠른 심장 박동과 혈압 상승으로 강한 흥분을 경험하고, 감정과 자극을 강렬하게 느끼며, 몸의 감각과 긴장도가 높아지게 되고, 비자발적이고 조절 불가능한 움직임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사고는 너무 빨라져 조급하게 되고, 사려 깊지 못하면서 반사적이고 충동적인 면을 보이게 되지요.

저각성의 영역에 머무는 중인 사람은 등쪽 미주신경이 작동하게 되며, 반응성이 약화되고, 운동기능이 떨어지거나 마비되기까지 하는 반응을 보입니다. 이를 부동화 방어가 발동된다고 표현하는데요. 쉽게 어류나 파충류가 보이는 위험 상황에서 움직임을 멈추며 때론 숨조차 쉬지 않는 상태를 떠올려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저각성의 행위 경향성은 타인의 주의를 끌지 않는 수동적인 나태함이나 느린 움직임과 유사합니다(마치 포식자의 주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그리고 마음의 내부를 정지시키게 되지요. 그러면서 감정을 감지하고, 감정반응을 느끼는 능력이 약화됩니다. 뿐만 아니라 인지적 처리도 약화되는데, 명료하게 사고할 수 있는 능력과 위험을 평가하는 능력이 훼손됩니다. 그로 인해 뭔가를 하는 것을 포기시키고, 주저앉히게 만듭니다.

수용의 창에 머무는 사람은 배쪽 미주신경이 작동하여, 최적의 각성을 조절합니다. 각성이 너무 심하지도, 너무 약하지도 않아서 충분히 이 현실을 알고 머무를 수 있으며, 충분히 대뇌피질의 활동이 일어날 수 있게 됩니다. 지금 주어진 문제 사안의 감정과 충동, 힘든 신체감각을 견디며 반응할 수 있게 됩니다. 특히 연결감을 느끼고, 이를 활용할 수 있게 되는데요. 예를 들면, 인질로 잡혔을 때, 공포를 견디면서 일단 강도를 먼저 달래고, 협상하려 하고, 심정에 호소하거나 주의를 다른 데로 끄는 등의 행동이 이 수용의 창에 머무르는 가운데 보인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많은 내담자들에게서 수용의 창이 좁은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특히 트라우마 환자들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는 각성의 변화가 그들에게는 어려움이 되게 되는 것이지요.

상황에 따라 우리는 과각성의 영역과 저각성의 영역에 머물러 반응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의 대부분은 과각성이나 저각성 상태가 필요하지는 않지요. 이런 적절한 각성조절의 실패는 아래 인용된 글처럼 어려움을 낳습니다.

각성이 과각성이나 저각성의 영역에 머물면 행동은 덜 구조적이게 되고, 또 반사적인 방어 경향성은 무작위적이고 비조직적으로 드러난다. "마음이 수용의 창을 벗어난 상태에서는 반응의 유연성에 대한 전전두엽의 중재 능력은 일시적으로 정지된다. 통합적인 인지적 처리라는 '상위 모드'가 반사적 반응이라는 '하위 모드'로 대체됐기 때문이다(Siegel, 1999). 과각성이나 저각성 영역에 있을 때 트라우마 경험은 단일한 전체 혹은 통합된 자기감으로 통합되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향상실(disoriantation : 주위 환경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능력을 잃은 상태)에 대한 장기적 경험은 지각 및 행동, 자기 상태와 관련된 분열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다시 말해, 과각성 상태에서 반사적이고 방어적이 되다가 저각성 상태에서는 온순하고 순응적일 수도 있다. 이러한 통합된 자기감의 분열은 역으로 더 심각한 방향 상실과 해리와 각성 조절의 어려움을 낳을 것이다.
인내의 창의 너비는 "반응 역치"를 끌어내는 필요한 자극의 양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반응 역치가 낮은 경우, 너무 적은 양의 자극에도 신경계가 활성화될 수 있는 반면, 반응 역치가 높은 경우 신경계가 활성화 되는데 보다 많은 자극이 필요하다. 최적의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환경에 내재된 자극성과 복잡성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역치가 높으면서도, 환경의 미묘한 변화나 새로움을 감지할 수 있을만큼 역치가 낮아야 한다.
트라우마화 된 사람들은 전형적으로 너무 낮거나 높은, 혹은 그 두 가지 모두의 역치 수준을 가지고 있다. 내담자의 역치 수준은 내담자가 정보를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 외상으로 인한 왜곡, 그가 가진 민감도들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로 작용할 수 있다. 치료자들은 내담자로 하여금 자신의 역치 수준을 인지하고, 최적의 각성 수준을 넘어설 때 나타나는 각성의 신체적 징후들을 판별하며, 신체적 중재를 통해 인내의 창의 너비를 확장시킬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출처 : 트라우마와 몸

오늘 강의에서 민병배 선생님이 강조를 하셨습니다. 심리치료가 수용의 창 안에서 작업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요. 최적의 각성영역에서만이 대뇌피질의 기능이 유지되고, 통합을 위한 작업이 가능해진다는 점을 말씀해주셨어요. 제가 이 점을 신경쓰지 못한 것이 좀 미숙했던 부분이라 반성하게 되는데요. 이 점을 꼭 기억하여 치료 때 반영하고자 마음을 먹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