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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모음

억제에 대하여

psyglow 2025. 4. 3. 15:48

억제란 단어를 여러분 들으면 어떤 어감으로 느껴지시나요?

십수 년 전만 하더라도 이 단어가 사람들에게 뭔가 체한 느낌을 주고, 뭔가 부당함을 겪는 거 같고, 억제의 요구 자체가 잘못처럼 여겨지는 인상이지는 않았을 듯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는 이 억제라는 단어가 중성적이지 않고 부정적인 의미에 훨씬 더 가깝게 다가오죠. 그래서 예를 들어 아이의 행동과 표현반응을 억제시키는 것에 있어서 부모들이 전보다는 머뭇거리게 되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자유의 가치가 과거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면서 나타나게 된 현상이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만 추측을 해보았습니다. (또한 자유의 개념에 대해 편향되고 오해하는 사람들은 자유에 딸린 책임의 영역을 매우 협소하게 인식하며 더 이런 억제란 단어를 못마땅하게 여길 수 있기도 하지요)

물론 이 억제라는 단어 앞에 무엇이 오느냐에 따라서는 이 억제의 속성과 느낌의 결은 많이 달라지게 되기 마련이겠습니다.

한번 떠올려 봅시다.

식욕의 억제, 문제행동의 억제, 감정의 억제, 충동의 억제, 지구 온도상승의 억제, 희망의 억제, 투기 심리의 억제 등등.

제가 예시로 든 것들을 하나씩 읽어가다 보면 억제라는 단어의 결이 계속 달라지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억제를 사전적 의미로 한번 찾아볼까요? 이건 NEVER에 제시한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의한 것들로 우선 따왔습니다.

억제(抑制, inhibition)

1. 감정이나 욕망, 충동적 행동 따위를 내리눌러서 그치게 함.

2. 정도나 한도를 넘어서 나아가려는 것을 억눌러 그치게 함.

3. 의학 자극으로 흥분한 신경 세포의 활동이 다른 신경 세포에 의하여 억눌림.

막상 저 사전에서의 어휘 설명만 보게 되면 또 상당히 억제란 단어가 중성적이고 외려 긍정적인 쪽에 더 치우쳐져 있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상담을 하다 보면 이 억제라는 단어와 더불어 유사한 단어인 통제라는 단어를 일부 유형의 내담자들은 불쾌한 방향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억제나 통제의 단어가 마치 억압과 같은 결로 그들에게 다가오는 것을 체감하게 되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우리가 사회에 혹은 세상에, 하다못해 단지 내 몸 하나가 순환하여 돌아가기 위해서 억제라는 기제(mechanism)가 우리에게 필요한 경우는 다반사입니다.

저는 억제란 개념을 심리작용에 끌어다 이야기하게 될 때에는 때로 스위치를 내가 능동적으로 누를지 말지 선택해 누르는 것으로 이해시키려 합니다. 그 스위치가 고장 나서 작동이 안 되거나 눌렀는데 반대로 작동되거나 하면 안 되는 것이잖아요? 이게 심리학 분야에서 쓰이게 되는 탈억제(disinhibition) 상태인 것이지요, 이것은 위험하고 부적응적인 것이고요.

인간의 뇌 중에서 주로 대뇌피질이 관장하는 이성의 뇌는 여러 중요한 활동을 하지만 또한 이런 inhibition을 관장합니다. 그리고 이 대뇌피질은 태어나는 순간에 이미 갖춰지기보다 양육되어가고 사회화되어가며 계속 발달해나가지요. 마치 우리의 아이들이 조절력이 없는 채 태어나 조절력을 점점 갖춰나가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 inhibition 여부로 사람의 성숙의 정도를 가늠해볼 수 있기도 한 것입니다. 그리고 inhibition이 기능적으로 잘 되던 어른이라도 만일 치매에 걸리거나 어떠한 대뇌피질 상의 손상을 겪게 되면 inhibition의 기능이 약해지고 행동과 성격의 이상 변화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고요.

그러니 일상에서는 물론이고 심리치료를 받을 때 혹여 이 억제란 단어를 마주하게 된다면 좀 더 포용력 있게 이 단어를 받아들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결국 억제의 요구(필요한 것에)는 적응을 도모하기 위한 방안인 것일테니까요.

또한 양육을 하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이 아이의 억제력을, 통제력을 긍정적인 이득에 잘 초점화시켜 아이들이 체득할 수 있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민병배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이 억제란 단어에 대한 오해를 언급하시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 확실히 내담자들 입장에서는 이 억제란 단어가 막연하게 좋지 않게 들렸던 경우들이 있지.’를 새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꼭 여기 공유를 해보고 싶었네요.

 

추가! 우리가 심리학을 접하게 되면, 마주하게 되는 개념으로 방어기제가 있죠. 이 방어기제 중에서도 억제란 단어가 있지요. 물론 지금 이야기하는 inhibition보다는 좀 더 작은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말하는 억제는 suppression이거든요. 이 억제는 가장 수준이 높고 기능적으로 평가받는 ‘적응형(high adaptive)’ 방어에 분류가 됩니다. 적응형 방어기제들은 만족을 최대화하면서도 감정과 사고에 대한 의식적 자각을 허용합니다. 쉽게 얘기하면 내 감정, 욕구, 충동을 의식적으로 알지만 내가 얘를 능동적으로 다루는 것들을 의미하거든요.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억제는 이것은 억압과도 차이가 있습니다. 억압은 아예 내가 그 감정, 욕구, 충동의 존재를 용납하지 못하고 의식으로 끌어오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며, 이는 훨씬 낮은 하위 수준의 방어기제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