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담자가 내담자의 감정에 책임을 지려하고 내담자의 문제를 고치거나 해결해주어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자신에게 부과하면, 그에 따른 결과는 상담자가 느끼는 부적절감이 될 것이다. 더구나 상담자는 자신이 느끼는 슬픔, 분노, 수치, 또는 내담자가 자극한 다른 감정, 즉 역전이 때문에 불편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상담자는 다음과 같은 비효과적인 반응을 할 것이다:
- 감정이 의미하는 바를 해석하고 자신과는 거리를 둔다.
- 지시적이 되어서 내담자가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지 얘기한다.
-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고 내담자를 안심시킨다.
- 불안해하거나 주제를 바꾼다.
- 침묵에 빠지거나 정서적으로 철회한다.
- 자신의 감정을 노출하고 그에 대한 논의로 옮겨간다.
- 내담자를 구해내려는 시도를 함으로써 내담자를 왜소화시킨다.
- 내담자와 지나치게 동일시하고 통제적이 된다. 즉, 상담자 자신의 원치 않는 감정을 제거하기 위해 어떤 결정을 내리거나 특정 행위를 하도록 내담자를 압박한다.
만약 상담자가 이런 부적절한 책임을 가정하지 말아야 한다면, 내담자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내담자의 감정에 대한 상담자의 적절한 반응은 다음의 3가지, 즉 규명하기, 함께 하기, 그리고 수용하기이다. 첫째로, 상담자는 내담자로 하여금 자신이 가진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고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둘째로, 상담자는 내담자가 자신의 감정을 관심 있는 타인과 공유할 수 있도록 내담자에게 공감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셋째로,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거나 '맥락화' 하도록 조력을 제공하여 왜 이 특정 순간에 그러한 감정을 경험하게 되는지 깨닫게 한다. 상담자는 이렇게 함으로써 내담자 반응을 타당화 한다(White, 2007). 상담자가 이런 세 방향의 도전을 받아들이지만 내담자 감정을 유발하거나 변화시켜야 한다는 책임을 가정하지 않는다면, 내담자가 나타내는 어떤 감정에도 효과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할 것이다.
출처 : 상담 및 심리치료 대인과정접근
위의 글은 상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내담자의 온갖 감정과 그것을 대하는 치료자의 태도에 대해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이 대목을 읽다보니, 얼마 전 종결한 한 청소년 내담자가 상담 초반부에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상담이 어떤 것이라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화로 기분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란 대답이 나오더라고요. 이 대답을 살펴보면, 자기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기보다 치료자에게 의존하고, 감정 발생과 유지의 책임을 외부로 돌리려는 외재화의 태도가 잘 드러난 것이지요.
상담을 하다 보면 온갖 의사결정에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답을 구하는 경우들도 종종 마주합니다. 마치 짧은 상담 회기 동안 얻은 정보만으로 치료자가 내담자의 상황과 맥락을 정확히 파악하여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려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처럼 말이지요. 시간이 충분하다면 내담자가 그 의사결정을 스스로 내리게 돕고 책임져보도록 여러 상담작업을 해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이런 질문을 상담 시간 말미에 꺼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는 내담자가 치료자로 하여금 명석하고 신속한 판단을 내리도록 종용함으로써, 스스로 감당해야 할 불안한 감정을 회피하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잘 훈련된 치료자는 성급히 답을 주려 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내담자가 감정을 견디고, 의사결정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도록 이끌 겁니다. 그 지점이 답을 얻고자 했던 내담자 입장에서는 마뜩잖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저로서도 내담자가 흡족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인간적인 욕구가 듭니다만, 지금 이 답을 주는 것이 과연 내담자의 심리적 성장과 치료 본래의 목적 달성에 실제로 도움이 될지를 가늠해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구원자가 되고 싶다는 섣부른 환상을 조용히 내려놓게 됩니다. 정답을 주지 않아 생겨나는 내담자의 아쉬움, 불만, 때로는 원망스러운 눈빛까지도 상담의 과정으로 기꺼이 껴안으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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