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아웃2 영화를 후배 선생님과 아주 감명깊게 본 기억이 납니다.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들이 불안이(Anxiety), 부럽이(Envy), 당황이(Embarrassment), 따분이(Ennui)이죠. 사춘기가 되며 더욱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을 표현했습니다. 주인공 라일리가 여자아이라서 제게는 사춘기 시기에 겪는 정체감과 대인관계에서의 문제가 너무 잘 와닿았고요. 우리 사회가 불안을 너무 조장하여 그 영향력 아래 있는 한 사람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불안이 마음의 통제를 뺏어버리고 폭주하는 모습, 신념을 바꾸는 모습, 또 공황 증상으로까지 이어지는 모습 등을 보면서 눈물이 철철 나오더라고요.
커가면서 제가 어머니한테 많이 타박받던 말 중 하나가 "왜 그걸 예상도 못하니?"였습니다. 나중에서야 저의 기질 검사를 하고, 어머니에 대한 심리학적 평가가 어느 정도 가능해지면서 불안이 잘 유발되는 기질이었던 어머니한테는 정반대의 기질인 제가 너무 이해가 되지 못했겠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요. 어머니가 보는 세상에서 저의 낙관적이고, 느긋한 성향은 답답하고 치명적인 단점으로 받아들여져왔겠지요. 그렇지만 어린 아이, 청소년이었던 제가 뭘 그리 어른들이 생각가능한 만큼의 미래 예상을 할 수 있었겠어요. 제 기질 탓도 있지만 그 경험은 어머니가 저를 발달단계에 맞게 봐주지 못한 결과이기도 했지요.
물론 위험과 실패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은 중요합니다. 이걸 강점으로 구체화한다면 신중함이고, 상상의 정교성이 가능한 덕분에 인간이 가지게 된 축복의 능력이지요. 하지만 그런 걱정과 염려들이 상상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들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 것이 같이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앞날에 있을 문제들을 다 대비하거나 통제 가능한 신이 아닌 우리가 인간이라는 겸손함을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요.
얼핏 보기에는 미래를 많이 걱정하는 사람일수록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끔찍한 결과를 자주 떠올릴 테니 구체적으로 미래의 결과를 생각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와 반대입니다. 걱정이 많고 불안한 사람일수록 미래를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막연하고 모호하게 지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할 수 없지만 막연히 무언가 예상 밖의 사건이 벌어지는 게 두려운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걱정을 반복할수록 걱정의 내용이 점점 더 구체화 되는 것이 아니라 추상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출처 : 우울과 불안을 이기는 작은 습관들
이 책에서 서술하듯 불안은 점점 더 파고들어갈수록 추상화됩니다. 구체적인 것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에 모호하고, 불확실함을 더 증가시킬 뿐입니다. 근데 불안이 잘 생기는, 위험회피가 높은 사람들이 제일 피하고 싶은 것이 이 모호함과 불확실성이지요. 참 아이러니 하지 않나요? 그러다보니 미래를 불안의 시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잘 이해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의 추상적인 속성이 계속 강화되어가는 탓에 청자 입장에서는 구체적으로 알아듣기 어려우며, 게다가 확실히 존재하는 경험도 아니다보니 의아함만 남기면서 현실성 없이 보이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지요.
불안이 높은 엄마와 사춘기 자녀 간 싸움을 상상해봅시다. 엄마는 계속 안 좋은 일을 상상한 것을 전달하며 자녀를 움직이게 만들려하지요. 근데 따분이와 친한 사춘기 자녀는 엄마가 되도 않는 말을 지어만낸다고 생각하고 엄마에 대한 회피 동기만 계속 강화해나갑니다. 그 걱정과 염려가 자녀에게는 와닿지 않고, 엄마 혼자서 이상한 예상에만 빠진 것으로 치부되면서 결국 설득에 실패하게 되지요.
하지만 일부 인사이드아웃2을 본 관객들이 불안이를 '빌런'이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불안은 우리가 없애버려야 할 감정은 아닙니다. 그저 미래 예상 상황에서 써먹을 감정 경험인 것이지요.
불안을 유발하는 생각에 걸려 들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내가 불안하구나"를 인정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우리는 감정이 생각과 경험을 조작한다는 점을 체험해왔습니다. 그러니 일단 내가 불안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내 시각이 불안의 안경으로 현상을 보고 있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거지요.
두 번째, 내 머릿속에서 무수히 떠오르는 걱정들을 이런 이미지에 대입해 떠올려보는 겁니다. 인사이드아웃2에 나오는 불안이가 라일리의 ‘상상의 나라’에 베개 성의 직원들을 가둬놓고 끊임없이 나쁜 상황에 대해 그림을 그리게 만드는 장면으로요. 이것을 하게 되면, 지금 불안해서 나한테 떠오르는 미래 예상들이 사실(진짜 경험)이 아닌 내 마음의 창조물이며, 그저 여러 시나리오 중의 하나일뿐이라는 것으로요. 이렇게 떠올려보는 것이 걱정과 염려에 대한 ACT의 탈융합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늠해보는 겁니다. 지금 이런 생각, 시나리오들이 필요한 상황인가? 마치 내가 선택해서 이걸 영화로 제작할 것인가? 필요하다면, (영화로 제작할 거라면) 나는 그것들을 생각해내고 고민하는데 얼마나의 시간과 자원을 쓸 것인가, 한계(limit)을 정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것은 앞에서 말했듯 우리가 앞일을 다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시간 한계도 설정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나의 한계설정은 감정과 생각들이 마음 안에 범람하는 사이에서 나에 대한 주도권을 잃지 않는 감각을 만들어주고, 자아(Ego)가 역할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게 되지요.
그리고 그 시간 한계 안에서 최대한 걱정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려 애써야 합니다. 추상적으로 뭉뚱그릴수록 내가 다룰 수 없는 문제가 되고, 그 걱정과 염려가 되는 사안에 대해서 점차 자신감을 잃어가게 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해서 내가 이 걱정과 염려가 만들어준 시나리오에서 행동으로 옮겨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의 '나에게의 유용성'을 판단해보고, 그 판단 여부에 따라 행동으로 실천하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 행동을 할 때에도 '여전히 불안이 있어요'라는 호소들을 합니다. 그렇지만 행동을 한다고 해서 불안이 없어지기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냥 그 행동을 하면서도 불안을 친구 삼아 같이 동행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ACT의 수용과 전념행동이 작동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안으로 인한 염려와 걱정이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닌 경우라면, 용기있게 잘 들여다보는 것도 해보아야 합니다. 불안을 회피하지 않고 잘 느껴보려 할 때, 종종 내가 정말 원하는 가치를 발견하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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