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모음

자율성, 부모 계획대로 키워선 절대 발달할 수 없는 것

psyglow 2025. 6. 12. 23:52

출처 : Gemini

얼마 전까지 한참 떠들어대던 우리 사회 issue가 있었습니다. ‘7세 고시’, ‘4세 고시’. 나의 기대와 계획에만 철저히 맞춘 양육방식의 한 일면이지요물론 저것을 준비하는 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사랑과 관심, 자녀가 별 탈 없이 크기를 바라는 마음은 분명하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근데 사실 사랑이란 게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꼭 적합한 사랑의 표현과 제공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한 노릇이지요.

실은 저것은 부모가 행하는 회피의 일종이기도 합니다. 아이가 하는 실패의 경험, 낮은 계급이 될 것이라는 불안, 그로서 자신이 최고의 양육을 해주지 못한 부모가 된다는 두려움을 통제하기 위한 시도지요. 근데 그것들로부터 회피하려다가 오히려 아이를 이르게 평가 장면에 가혹히 내몰면서 이 시기에 소화해내지도 못하는 비교와 잣대에 노출되는 경험, 또한 체험시키고 싶지 않았던 실패 경험을 굳이 오히려 겪게 하고요. 부모가 정작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결론적으로는 학대와 정서적 방치가 발생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무엇보다 해로운 것은 이렇게 부모가 자신의 기대와 계획에 맞춘 양육을 하려는 것은 자율성이라는 아이가 삶을 살아가면서 갖춰야 할 필수적인 성격 발달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사람은 자기가 주체가 되어 결정한 것이 아니면 하고자 하는 의욕을 느끼지 못한다. 동기motivation 분야의 선구자 리처드 라이언과 에드워드 데시 교수는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돈이나 사회적 지위 같은 외적 보상이 아니라 '자기 결정성'에 대한 주관적 느낌이라고 하였다. 즉, 얼마나 자율성이 보장된다고 느끼는지에 따라 동기의 정도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심리학과에 진학한 나 역시도 자기 결정의 강렬한 힘이 지금 여기의 나를 끌고 왔다고 확신한다. 당시 나는 부모님이 반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충당할 계획도 세웠다. 부모님의 반대가 있다 하더라도 무조건 한다는 결심이 섰기 때문이었다. 나 자신을 제외한 아무도 나를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반대에 부딪히면 넘어가면 그뿐이라고 자신했다.

자율성은 선택의 자유에서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키워간다. "이건 몸에 안 좋으니까 먹지 마. 오늘 날씨에는 그 옷이 안 맞아.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데 왜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냐. 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 제발 시키는 대로만 해."

자율성을 꺾고 성장을 정체시키는 지시가 '사랑'의 이름으로 전달된다. 작은 일이라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주어지지 않으면 자율성은 성장하기 어렵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은 문제를 일으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수동적인 자세로 삶을 대한다. 자신도 모르게 열정과 도전 대신 안전과 권태를 선택하는 셈이다. 자율적인 결정 끝에 져야 하는 책임도 아이들에게는 몸에 좋은 쓴 약이다. 행위의 결과를 직접 경험하고,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를 모두 겪어보아야 역경을 견디려는 용기와 내 삶을 내가 끌어가려는 주도성이 생긴다.

많은 걸 돌봐주고, 좋은 결정을 내려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는 아이 삶의 전 영역에 개입한다. 사랑이라고 하고, 나를 위한 것이라고 하고,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의 말이다 보니 거스르기가 쉽지 않다. 음식은 주는 대로 먹고, 개성을 포기하고 실용적인 옷을 입는다. 동네에서 이름난 학원을 다니고, 유명하다는 선생님에게 과외를 받는다. 글쓰기로는 미래가 불분명하다며 경영학과에 가라고 하고, 노래 잘하는 건 취미로 하라며 법과대학에 입학시킨다. 그런데 뭘 해도 즐겁지가 않다. 내가 뭘 원하는지 알 수도 없고, 정말 이걸 하고 싶었는지도 확신이 안 선다.

아이에게 작고 사소한 일부터 생각하고 결정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실수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되 실수를 통해 무엇을 배우는지 지켜보아야 한다. 실수를 겪고, 그 결과에 대처해보는 것만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없다. 설명하고 설득하면서 부모 의지를 강요하는 시간을 대화라 고 이름 붙이지 말아야 한다. 먼저 나서서 무언가를 했을 때는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관심을 갖고 칭찬해주어야 한다. 아이를 아무리 사랑하는 부모라 해도 자기 삶에 대한 열정과 재미를 만들어줄 수는 없다.

출처 : 영혼이 강한 아이로 키워라

조선미 교수님은 자신이 심리학을 선택해 지금까지 이것을 끌고온 과정을 스스로 밝히셨습니다. 저 또한 비슷해서 저는 반갑게 이 글을 보았습니다. 저도 심리학 전공에 대한 부모의 반대가 산재했지만, 기어코 선택을 바꾸지 않고 지금에 이르렀지요. 이런 현상이 바로 ACT에서 말하는 가치가 세워지고 그에 따라 전념이 일어난 것입니다. 가치란 사회의 요구에 맞춰, 혹은 주변의 기대에 맞춰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스스로를 파악하면서 정립해온 자아가 자신의 삶의 방향을 맞춘 것이지요. 

위에서 조선미 교수님이 예시로 든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데 왜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냐. 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 제발 시키는 대로만 해!”라는 멘트. 뜨끔하지요? 실은 보통의 부모인 우리도 이런 말을 어쩌다가 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아이의 실수, 시행착오를 포용해주지 못하는 말이지요. 이것을 알아차렸다면, 무작정 자책만 하기보다 한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양육을 하는 것은 우리들의 부모로부터 그런 자비심이 충분한 양육을 경험해보지 못해서 이런 관념들이 우리에게 유산처럼 남겨진 것인데, 이것이 다시 우리 아이들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유산만큼만 내가 내 아이에게 관념을 물려줄지, 아니면 더 발전해서 번영시킨 양육으로 세상을 더 잘 살 관념을 물려줄지를 선택하는 것으로요.

지금의 부모들은 자녀들이 성장한 시점에 그 양육의 성공과 실패의 성적표를 받아들게 된다면, 그 성적표에 가장 첫 번째 과목이 되는 것이 아마도 자신의 아이에게 잘 자율성을 키워주었냐일 것입니다. 조선미 교수님의 글이 우리에게 경종을 일으키듯 우리 아이가 겪을 실패나 좌절 경험을 미리 두려워하고 그 영향을 잘못 예단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부모로서 여러분이 피하고 싶은 아이의 실패와 좌절 경험은 잘 와닿지 않더라도 아이 개인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말 필요한 것일 수 있으니까요.